
프리츠 하버(Fritz Haber)
하버, 프리츠 야코프 하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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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프리츠 야코프 하버(독일어: Fritz Jakob Haber, 독일어 발음: [ˈfʁɪt͡s ˈhaːbɐ] ( ), 1868년 12월 9일~1934년 1월 29일)는 독일의 화학자이다. 공기중의 질소를 이용하여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인 하버법을 1909년에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이 발명으로 질소비료를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식량 생산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여 인류가 기아에서 벗어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화약제조에 필수요소인 질소를 손쉽게 대량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온결합성 고체의 격자에너지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막스 보른과 함께 개발하여 현재 본-하버 사이클이라 불린다. 유대인이기보다는 독일인임을 자랑스러워할 정도로 애국자이자 군국주의자였던 하버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자신의 조국인 독일의 승리를 위해서 독가스 등 화학무기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때 염소가스를 비롯한 여러 치명적인 독가스들을 개발해서 "화학전의 아버지" 또는 "독가스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이처럼 화학무기 개발에 앞장선 것에 대한 죄책감이 부인 클라라 이머바르을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버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에 막대한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1934년 나치당에 의해 홀대받았으며 이후 하버는 자발적으로 독일을 떠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나중에는 프리츠 하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친척 중 여러 사람이 나치의 집단수용소에서 죽음을 당했는데, 이 때 하버가 만든 독가스인 치클론 B가 사용되었다. 프리츠 하버는 제1차 세계 대전후 독가스 생산과 연루되어 전범자 신분을 우려해 도피생활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시작 전에 유대인에 대한 독일 내 여론이 악화되자 여러 나라를 전전하였는데, 다니엘 시프 연구소의 이사직 수행을 위해 이스라엘로 가던 중 스위스 바젤의 한 여인숙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생애 초기 출생과 성장 프리츠 하버는 프로이센 왕국 브레슬라우(현재의 폴란드 브로츠와프)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프리츠 하버가 살던 지역에서 하버라는 성이 흔한 성씨였긴 하지만, 프리츠 하버의 가정은 켐펜(현재의 폴란드 켕프노)에서 양모 장사를 하던 증조부 핑쿠스 젤리히 하버의 대에 이곳으로 이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