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타 루스타벨리(Shota Rustaveli)
이 스타의 새 소식이 올라오면 알림으로 받아보세요
날짜별 보기
누구인가요?
쇼타 루스타벨리(조지아어: შოთა რუსთაველი) (1172~1216년)은 조지아의 12세기 때의 시인이며, 조지아 세속 문학의 가장 훌륭한 기고가 가운에 한명이다. 그는 조지아의 국가적인 서사시 "표범 가죽을 두른 기사"(ვეფხისტყაოსანი, 베프키스트카오사니)의 저자이다. 생애 쇼타 루스타벨리에 대한 동시대의 자료들은 거의 없거나 미미하다. 그의 창작 시, 즉 서시 속에 그는 그와 동일한 인물이라는 실마리가 된다. 그 시에서 자신을 "루스타벨리라는 사람"으로 동질화 한다. "루스타벨리는" 성은 아니지만, "루스타벨리의/에서의/소유자"로 번역될 수 있는 영토와도 관련있는 별칭이다. 후일, 15~18세기의 조지아의 작가들은 더 많은 정보를 준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조지아의 과거 십자가의 수도원에 있던 프레스코화와 문서에서 보존된 이름인 쇼타 루스타벨리가 그 작가와 동일 인물이라는데 거의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그 프레스코화는 조지아인 성지 순례자였던 티모테 가바슈빌리가 1757~1758년에 그린 작품이며 1960년에 조지아의 학술팀에 의해 재발견 되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같은 동일한 문서에서는 쇼타가 수도원의 후원자이며 "고위급 재보 담당자"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따라서 진보 시대에 루스타벨리가 "타마르 여왕"의 수상이며 고령에 은퇴해서 수도원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인기 있는 전설의 반복일 뿐이다. 민속적인 전통에서와 17세기의 왕족 시인 아르칠은 모두 루스타벨리가 조지아 남부의 그의 고향인 루스타비 마을(오늘날의 트빌리시 근교의 루스타비의 도시가 아님)이 위치해 있는 메스케티 지역의 토착인 이었다고 한다. 그는 1160~1065년 사이에 태어났다고 추정된다. 루스타비에 대한 전설적에서는 그가 겔라티와 이칼토, 그 후에 "그리스"(예를 들어, 비잔티움 제국)의 아카데미에서 교육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주요 작품을 저술한 때는 1180년대 이전이 아님은 확실하며 13세기의 첫 번째 10년 이후도 아닌 것이 확실하며, 그의 작품들은 아마도 1205~1207년경에 작성됐을 것이다. 작품 "표범 가죽을 두른 기사"는 많은 언어들로 번역되었다. 그 작품의 1712년에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초판 인쇄 되었고. "표범 가죽을 두른 기사"의 원고는 조지아에서 제작된 세속 작품들 가운데서 중요한 위치에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