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셀마 라겔뢰프(Selma Lagerlö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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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셀마 오틸리아 로비사 라겔뢰프(스웨덴어: Selma Ottilia Lovisa Lagerlöf 셀마 오틸리아 로비사 라겔뢰브[*], 스웨덴어 발음: [ˈsɛ̂lːma ˈlɑ̂ːɡɛˌɭøːv], 문화어: 쎌마 라게를뢰프, 1858년 11월 20일~1940년 3월 16일)는 스웨덴의 작가이자 교사이다. 1909년 노벨 문학상 부문에서 여성 최초 수상자로 등극한 여류 문학작가로, 1914년 스웨덴 한림원 회원으로도 등극한 최초의 여성이기도 하다. 생애 스웨덴 베름란드주 모르바카(Mårbacka, 현 스웨덴 베름란드주 순네)의 농장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에릭 구스타프 라겔뢰브는 베름란드주 군부대 중위였으며 어머니인 루이즈 라겔뢰프는 공장장의 자녀였다. 둘은 결혼 후 6명의 자녀를 낳았으며 셀마 라겔뢰프는 그 중 다섯째 딸이었다. 라겔뢰프는 태어났을때부터 고관절 이형성증을 가지고 있어 세 살까지 두 다리에 통증을 겪었으나 이후 점차 회복했다. 어린 시절에는 조용한 성격이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독서하기를 좋아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시를 쓰는 것을 좋아했으며 당시에 쓴 시는 공식적으로 출간하지 않았다. 유년시절에는 할머니가 돌봐주었기 때문에 할머니로부터 동화와 판타지를 들으며 자랐다. 당시의 다른 상류층 자녀처럼 가정교육을 받았다. 가정교사로부터 영어와 프랑스어를 교육받았다. 1868년 10살이 되었을 때 성경책을 완독했다. 이 당시 아버지가 편찮으셨으며 자신이 성경을 한 장, 한 장 읽으면 아버지의 병이 나을 것이라 믿었다. 아버지는 17년을 더 살았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어린 나이부터 셀마 라겔뢰프는 성서 언어에 익숙해졌다. 1884년, 라겔뢰프는 또 한번 변화를 겪게 된다. 라겔뢰프가 직접적으로 잘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아버지가 알코올 의존증에 걸렸었던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아버지는 라겔뢰프가 학업을 이어나가고 여성운동에 동참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라겔뢰프는 노벨문학상에서 받은 상금을 아버지의 농장을 되사는데 이용했다. 그녀는 교사가 되기 위해 스톡홀름에 위치한 Royal Seminary에 들어가 학업을 마쳤다. 교사 및 작가 활동 라겔뢰프는 1882년부터 1885년까지 스톡홀름에 위치한 Royal Seminary(Högre lärarninneseminariet)에서 교육받았다. 1885년부터 1895년까지 스웨덴 근교지역 란스크로나에 위치한 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