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드로 페르티니(Sandro Pert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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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산드로 페르티니(이탈리아어: Sandro Pertini, 1896년 9월 25일 ~ 1990년 2월 24일)는 이탈리아의 저널리스트, 사회주의 정치인이다. 1978년부터 1985년까지 제7대 대통령으로 일했으며, 퇴임 후 종신 상원의원으로 일했다. '산드로'는 그의 별칭이고, 본명은 알레산드로 페르티니(이탈리아어: Alessandro Pertini)이다. 이탈리아의 반파시스트·레지스탕스 운동의 영웅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탈리아를 경제대국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약력 산드로 페르티니는 사보나 주의 스텔라에서 태어났다. 부친인 알베르토는 바라체의 살레시오회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 지주였다. 페르티니는 제노아 대학교에서 법률 학위를 땄다. 그러던 중 아델키 바라토노(Adelchi Baratono)로부터 철학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페르티니는 개혁적 사회주의자였던 그의 영향을 받았고, 그는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그는 훗날 리구리아 노동운동의 핵심이 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페르티니는 이탈리아의 참전에 반대했지만, 그는 상장을 수여받는다. 1918년 그는 연합사회당(PSU)에 입당한다. 반파시스트 운동 1922년,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가 파시즘 체제를 수립하였다. 그러던 중 PSU의 지도자 자코모 마테오티(Giacomo Matteotti)가 파시스트에게 암살되자 그는 반전체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된다. 그는 1926년까지 석공으로 있었고, 그 해에 수감되었다. 1935년, 페르티니는 산토 스테파노 섬에 다시 수감되었다. 수감 중 병으로 고통을 받곤 했지만, 그는 끝까지 사죄하지 않았다. 1943년 무솔리니 체제가 붕괴되었고, 그는 석방되었다. 석방 이후 그는 레지스탕스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이를 계기로, 그는 반파시스트·레지스탕스 운동의 영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페르티니는 무솔리니 정권 시절 고문을 당했지만, 그는 자신의 이상과 신념을 잃지 않았다. 정치 활동 1945년 4월 25일 그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공산당과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으며,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정치적 의혹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제국주의와 사회당 내의 부정부패를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사회당에 소속했음에도, 무소속 정치인들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