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이(Pu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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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아이신 교로 푸이(만주어: ᠠᡳᠰᡳᠨᡤᡳᠣᡵᠣᡦᡠ ᡳ Aisin Gioro Pu I, 중국어 간체자: 爱新觉罗溥仪, 정체자: 愛新覺羅溥儀, 병음: Àixīnjuéluó Pǔyí, 한자음: 애신각라 부의, 1906년 2월 7일 ~ 1967년 10월 17일)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宣統帝, 재위 : 1908년 ~ 1912년, 황제의 칭호는 1924년까지 유지)이자 만주국의 집정 및 황제(재위 : 1932년 ~ 1934년, 1934년 ~ 1945년)이다. 만주국 집정으로는 대동왕(大同王), 황제로는 강덕제(康德帝)이며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전국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중국 역사상 마지막 황제로 널리 알려져 있고 도광제의 증손자이다. 민제(愍帝), 양제(襄帝), 손제(遜帝), 폐제(廢帝), 말제(末帝)로 불리기도 한다. 만주어로는 거훙거 요소 한(만주어: ᡬᡝᡥᡠᠩᡤᡝᠶᠣᠰᠣᡥᠠᠨ Gehungge Yoso Han), 몽골어로는 휴브트 요스 칸(몽골어: ᠬᠡᠪᠲᠦ ᠶᠣᠰᠣᠻᠠᠭᠠᠨ xhubutu yos Khaa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생애 출생 1906년 청나라 제11대 황제인 광서제의 동생 순친왕 재풍(載灃)과 서태후의 측근인 대학사 겸 군기대신 영록(榮祿)의 딸 유란의 아들로 순친왕부에서 태어났다. 즉위 1908년 11월 14일 광서제가 붕어하자 당시 강력한 권력을 가진 서태후가 푸이를 동치제와 광서제의 후계자로 지명하여 태어난지 2년 10개월 만에 청나라 12대 황제 선통제로 즉위하였다. 청 왕조의 가법(家法)에 따르면 동치제가 죽었을 때, 항렬이 부(溥)자인 후손들이 황위를 계승해야만 했지만 서태후가 권력을 놓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동치제와 같은 항렬인 광서제로 황위를 승계하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푸이는 동치제와 광서제를 겸조하여 대를 잇게 되었다. 서태후는 푸이의 생부인 순친왕을 감국섭정왕(監國攝政王)으로 임명하여 정치의 실권을 위임하였고 광서제가 붕어한 다음날인 11월 15일에 훙서하였다. 즉위식은 1908년 12월 2일 베이징의 자금성 태화전에서 봉행되었다. 즉위식에서 푸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섭정왕인 순친왕은 "울지 마세요, 곧 끝납니다, 곧 끝나요!"라고 말하였고, 대신들은 대청제국의 불길한 징조라고들 하였다. 유모 왕초씨(王焦氏)는 자금성에 푸이와 동행하였다. 푸이는 생모를 7년 동안 볼 수 없었고 유모의 특별한 보살핌으로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