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레오 1세(Pope Leo I)
이 스타의 새 소식이 올라오면 알림으로 받아보세요
날짜별 보기
누구인가요?
교황 레오 1세(라틴어: Sanctus Leo PP. I, 이탈리아어: Papa Leone I)는 제45대 교황(재위: 440년 9월 29일 - 461년 11월 10일)이다. 그는 서로마 제국의 귀족 출신으로 ‘대교황’이라는 호칭을 받은 첫 번째 교황이다. 그러한 연유로 대교황 레오, 대(大)레오(라틴어: Leo Magnus, 이탈리아어: Leone Magno) 등으로도 불린다. 훈족과 반달족의 침공을 받을 때 용감한 태도로 로마를 구출하여 교황의 위엄과 권위를 크게 드러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후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진 서로마 제국은 사방에서 일어나는 외세의 침공 앞에서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또한, 레오 1세는 173편의 서간들과 100여편의 강론집을 남겼다. 그가 저술한 문헌들은 신학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라틴 문학사에서도 매우 중요시 되고 있으며, 특히 서간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 이전까지 가장 방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당대 교황들 중에서 레오 1세는 대부분의 강론이 전해져 오는 유일한 교황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의 서간 내용이 교황 재위시에나 선종한 후에도 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사후 교회학자라는 칭호를 받음과 더불어 기독교의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생애 초기 레오는 ‘사자’라는 뜻이다. 《교황 연대표》에 의하면, 레오는 이탈리아반도의 토스카나주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살았다고 한다. 431년 교황 첼레스티노 1세에 의해 부제가 된 레오는 곧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주교가 팔레스타인 교회의 치리권과 관련하여 예루살렘의 에우베날 주교가 문제를 저지르자 이를 처벌하도록 교황에게 부탁해 달라고 청원할 정도로 로마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노가 언급했던 아프리카에 간 교황의 사절이거나 사절의 시종이 레오였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요한 카시아노는 레오의 요청에 따라 네스토리우스의 오류를 논박한 신학 논문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레오의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 준 결정적인 사건은 서로마 황제가 직접 갈리아 최고 지도자인 애티우스와 알비누스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라는 임무를 맡긴 것이었다. 440년 8월 11일 교황 식스토 3세가 선종하자 레오가 만장일치로 그의 뒤를 이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해 9월 29일 레오가 교황좌에 착좌하면서 가톨릭교회의 중앙집권화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