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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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모리스 폴리도르 마리 베르나르 마테를링크(프랑스어: Count Maurice Polydore Marie Bernard Maeterlinck, 1862년 8월 29일 ~ 1949년 5월 6일) 백작은 벨기에의 시인이자, 극작가, 수필가이다. 그는 191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의 주된 주제는 죽음과 삶의 의미이다. 그는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침묵과 죽음 및 불안의 극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일대기 모리스 마테를링크 백작은 벨기에 겐트의 프랑스어권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학창시절 시와 단편들을 썼으나, 뒤에 다 없애고 지금은 몇 편만이 남아있다. 그는 부유한 부르주아 가문 출신으로 겐트의 자연 속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프랑스어가 모국어였고 가정교사에게 영어와 독일어를 배웠으며 8살 때 셰익스피어를 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7년 동안의 생트 바르브(Sainte-Barbe) 기숙학교 생활은 그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며 그곳에서 발견한 신은 사랑의 신이 아니라 공포로 군림하는 독재자였다. 반면 그곳에서 르 루아(G. Le Roy), 반 레르베르크(Ch. Van Lerberghe), 로덴바흐(G. Rodenbach) 등의 친구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이외에도 상징주의 시인이었던 베르아랑(E. Verhaeren) 역시 이 학교 출신이다. 생트 바르브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였으나 글쓰기를 계속하였고, 당시 유명 시인들의 작품을 실었던 <젊은 벨기에(La Jeune Belgique)>에 시를 기고하기도 하였다. 겐트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마친 뒤, 그는 프랑스의 파리시에서 몇 개월을 보냈다. 그는 그 곳에서 새로운 상징주의 움직임의 몇몇 구성원을 만나게 되는데, 이는 마테를링크의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테를링크가 변호사 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로 접어든 것은 몇 달 동안의 파리 체류(1885년 가을~1886년 봄)와 그곳에서 만난 빌리에 드 릴라당(Villiers de l’Isle- Adam)의 영향 때문이다. 특히 빌리에와의 만남은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고 가장 커다란 충격이었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