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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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포이어바흐(독일어: Ludwig Andreas Feuerbach, 독일어 발음: [ˈluːtvɪç ˈfɔʏɐbax], 1804년 7월 28일~1872년 9월 13일)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인류학자이다. 유명한 법학자인 파울 요한 안젤름 리터 폰 포이어바흐의 넷째 아들이다. 생애 교육 포이어바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 성직의 길로 들어설 목적으로 입학했다. 카를 다우프(Karl Daub) 교수의 영향으로 그는 당시의 유력했던 헤겔의 철학에 흥미를 가졌고,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베를린 대학교에 등록하여 헤겔 밑에서 배우려고 했다. 2년간의 제자 생활이 끝난 이후, 헤겔의 영향력은 점점 사라져갔다. 포이어바흐는 청년 헤겔파에 가입했는데, 이 단체는 헤겔 좌파로도 불렸으며 헤겔 철학의 급진적인 갈래들을 종합했다. 현존하는 서양 문화와 제도적 형태를 의미하는 역사를 통해 헤겔의 정신의 변증법적 진보를 해석하면서, 특히 기독교는 폐기하려 했다. 그가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신학에서는 내가 더 이상 공부할 것이 없다. 나는 자연을 내 마음속에 담기를 갈망하고, 그 자연은 신실한 신학자가 그 깊이를 움츠러들기 전의 것이다. 그리고 자연인으로써 인간은 완전한 본질을 갖는다." 이 편지는 포이어바흐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열쇠이다. 그는 에를랑겐대학교에서 자연 과학 학위를 취득했다. 초기 저술 포이어바흐의 최초의 책은 익명으로 출판된 《죽음과 불멸에 대한 고찰 (Gedanken über Tod und Unsterblichkeit, 1830)》으로 여기서 그는 개인의 불사불멸을 비판하며 스피노자가 말한 자연법칙의 재흡수에서의 불멸성을 지지한다. 그가 주장한 원리들은 그의 대중연설에서의 당황해 하는 태도와 함께 맞물려 학술적 논의에서 제외된다. 포이어바흐는 《근세철학사(Geschichte der neueren Philosophie, 1833-1837)》, 《아벨라르와 엘로이즈(Abelard und Heloise,1834)》 등을 저술하면서 몇 년간 분투한 뒤 1837년 결혼하여 뉘른베르크 인근의 브루크베르크(Bruckberg)에 있는 한 시골에 작은 도자기 공장을 갖고 있는 부인의 돈으로 생계를 이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