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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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 1803년 5월 12일 ~ 1873년 4월 18일)는 독일의 화학자이다. 생물체 내에서의 물질변환을 화학적으로 분석하였으며 유기화학 각 방면 발달의 기초를 마련하여 '농예화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동식물 성장에 대한 이론분석을 통해 실용적 주장을 하며 농업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촉진시켰다. 1841년에 식물의 무기양분설 및 최소 양분률을 발표하여 인조 비료제조와 사용의 필요성을 주장함으로 '무기화학 비료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기센 대학 교수시절에 화학, 약학 연구소를 만들어 학생들이 실험과 연구에 참여하여 직접 연구방법을 체득케 하는 새로운 교육 방법을 창시하고 종래의 도제(徒弟)식 학습법을 폐지하였다. 이를 통해 호프만, 케쿨레, 뷔르츠, 월리엄슨 등 우수한 화학자를 양성하여서 과학 교육 개혁의 선구자가 되었다. 1857년, 발효의 미생물 이론에 대해 파스퇴르와 논쟁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생애 어릴 때부터 화학에 매료된 리비히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가져온 화학 물질로 화약을 만들어 학교에서 폭발시키는 바람에 초등학교에서 퇴학당했다고 전해진다. 1820년 본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카스터너 화학 교수를 따라 에를랑겐 대학으로 전학하였다가 퇴학당하였다. 박사학위는 에를랑겐 대학에서 받았다. 그러나 그를 아끼던 카스터너의 추천으로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강의를 들으며 조제프 루이 게이뤼삭의 지도를 받았다. 1824년 귀국하여 21세의 나이로 기센 대학 조교수가 되어 그곳에서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화학 분야의 학과를 만들고 실험 중심의 화학교육을 실천하여 후일 최고의 화학 교육자로 불리게 된다. 그곳에서 14년간에 걸쳐 유기 화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리비히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유기 화합물의 탄소와 수소의 분석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리비히가 활동하던 19세기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유기화합물들을 분리하고 연구하던 시기였다. 예컨대 글루코오스는 1747년에 건포도에서 처음 분리되었고, 1838년에 듀마(Jean Dumas)가 '달다'라는 뜻의 glycos로부터 glucose라고 명명했지만, 구조가 밝혀진 것은 19세기 에밀 피셔(Emil Fischer, 1902년 노벨 화학상)에 의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