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리우스 에볼라(Julius Ev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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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줄리오 체자레 안드레아 에볼라(이탈리아어: Giulio Cesare Andrea Evola, 1898년 5월 19일 ~ 1974년 6월 11일)는 이탈리아의 극우 철학자였다. 에볼라는 자신의 가치를 전통주의, 귀족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로 간주했다.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특이한 사상가였으며 나치 독일과도 관계가 있었다. 전후 시대에 그는 이탈리아의 신파시스트 및 급진우파의 이념적 멘토였다. 에볼라는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포병 장교로 복무했다. 그는 다다 예술가가 됐으나 20대에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했다. 그는 불경을 읽다가 계시를 받을 때까지 자살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1920년대에 그는 오컬트에 참여했다. 그는 서양 밀교와 동양의 신비주의에 대해 글을 쓰면서 "마술적 이상주의"라는 교리를 발전시켰다. 그의 글은 독일 관념론, 동양의 교리, 전통주의, 전간기 보수 혁명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혼합했다. 에볼라는 인류가 물질적 욕망이 폭발한 암흑시대인 칼리 유가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이에 대항하고 원초적 재생을 일으키기 위해 에볼라는 "전통의 세계'를 제시했다. 에볼라에게 전통은 기독교가 아닌―그는 신을 믿지 않았다―권위, 계층, 질서, 규율 및 순종의 가치를 지닌 영원한 초자연적 지식이었다. 에볼라는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인종 법률을 옹호했고 결국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인종 철학자"가 됐다. 에볼라의 자서전적 발언은 그가 SS와 나치당의 정보 기관인 보안국에서 근무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는 1943년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이 무너지자 나치 독일로 도피했으나 괴뢰인 살로 정부 하에서 로마로 돌아와 급진우익 단체를 조직했다. 1945년 비엔나에서 소련 포탄 파편이 그를 허리 아래부터 마비시켰다. 1951년 재판에서 에볼라는 자신이 파시스트라는 주장을 거부하고 대신 스스로를 "슈퍼파시스타" (직역: '슈퍼파시스트')라고 불렀다. 이 진술에 관해 역사가 엘리사베타 카시나 볼프는 "이것이 에볼라가 자신을 파시즘 위 혹은 너머에 두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썼다. 에볼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급진우파의 "수석 이념가"로 불렀으며 그의 철학은 "20세기에서 가장 일관된 반평등주의, 반자유주의, 반민주주의, 반대중적 체계" 중 하나로 특징지어졌다. 에볼라의 글에는 여성혐오,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기독교 및 가톨릭교회에의 공격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