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안 페론(Juan Per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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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후안 도밍고 페론(스페인어: Juan Domingo Perón, 문화어: 후안 도밍고 뻬론, 1895년 10월 8일 ~ 1974년 7월 1일)은 아르헨티나의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1943년의 군사 쿠데타에 참여하여 군사정부의 내각에 입각, 노동부장관을 지냈다. 1944년 ~ 1946년 부통령, 1946년 ~ 1955년, 1973년 ~ 1974년 대통령을 지냈다. 그의 두 번째 부인은 에비타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에바 페론이다. 후안 페론은 정치적으로 페론주의 운동을 창시했으며, 아르헨티나 현대사에서 가장 큰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 1895년 페론은 부에노스아이레스주 남부 로케 페레스의 오두막집에서 태어났다. 마리오 토마스 페론과 후아나 소사 톨레도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선조는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후손이었다. 아버지 마리오 토마스 페론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의학도였는데, 결핵 치료를 위해 로케 페레스라는 작은 마을로 요양을 갔다. 이 곳에서 마리오 토마스 페론은 떼우엘체족 원주민 소녀 후아나 소사 톨레도를 만나 후안 페론을 낳고 동거생활을 했다. 당시 아르헨티나가 원주민을 적대시 했기 때문에, 마리오 토마스 페론의 본가는 그들의 동거 사실과 후안 페론의 존재를 숨겼다. 페론은 9세에 어머니와 떨어져 살게 됐다. 1911년 페론은 군사학교에 입학했다. 초기 경력 아르헨티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복무하여 육군 대령에 이르렀다. 1929년 1월 5일 아우렐리아 티손과 결혼했다. 1938년 후안 페론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알바니아의 아르헨티나 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했다. 이탈리아의 부임지에서 첫 부인 아우렐리아 티손이 결혼생활 9년 만에 자궁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1943년 아르헨티나 군사정부 1943년 아르헨티나에서 1943년 혁명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쿠데타가 발생했다. 아르투로 라우손의 지휘 하에서 일어난 이 쿠데타는 보수 성향의 라몬 카스티요 대통령에 반대했다. 후안 도밍고 페론은 육군 대령으로 군사 쿠테타에 참여했다. 페론은 쿠데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결국 노동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으로 승진했다. 노동부 장관 재임 시절, 아르헨티나 노동조합 내부의 생디칼리즘 세력과 사회주의 운동 세력이 연합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