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라비우스 요세푸스(Josep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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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라틴어: Flavius Josephus 플라위우스 요세푸스[*], 고대 그리스어: Φλάβιος Ιώσηπος 플라비오스 이오세포스[*], 기원후 37년경~100년경)는 1세기 제정 로마 시대의 유대인 출신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이다. 기원후 66년에 발발한 제1차 유대-로마 전쟁에서 유대군을 지휘하여 로마군에 맞섰으나, 로마군의 포로가 된 뒤 투항하여 정보를 제공해 주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배려로 풀려나 로마 시민이 되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라는 이름은 새로 로마 시민이 된 이들에게 적용되는 관례에 따라 보호자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가문의 이름을 따 '플라비우스'를 가문이름(nomen)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티투스의 막료로서 예루살렘 함락의 순간을 모두 지켜보았으며, 훗날 이 전말을 《유대 전쟁사》라는 책으로 남겼다. 생애 요세푸스가 그리스어 저서에서 사용한 이름은 '이오세포스 마티우 파이스(Ἰώσηπος Ματθίου παῖς)'→마티아스의 아들 이오세포스이다. 요세푸스는 아람어도 구사하였고 거의 확실히 히브리어도 구사하였다고 생각되지만 그의 이름이 이들 언어로 적힌 것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그리스어에서 사용한 이름에서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요세프 벤 마티탸후(יוסף בן מתתיהו), 아람어로 번역하면 요세프 바르 마티탸후(יוסף בר מתתיהו)→마타티아·하스몬 왕조의 아들인 요세프이다. 요세푸스 본인은 직접 지은 《유대 전쟁사(Ιουδαϊκός Πόλεμος)》의 고대 그리스어 번역문에서 자신을 "마티아스(마티탸후)의 아들 이오세포스(요세프), 예루살렘의 사제(Ἰώσηπος Ματθίου παῖς ἐξ Ἱεροσολύμων ἱερεύς)"로 소개하고 있다(I.3). 로마령(領) 속주였던 유다이아 지구의 주도(州都) 예루살렘에서 제사장의 집안에 태어났으며, 그 자신은 청년 시절에는 사두가이파나 엣세네파 같은 유대교의 여러 파를 거쳐 최종적으로 바리사이파를 선택했다고 한다. 펠릭스 장관 시절이던 기원후 64년에는 반(反)로마 폭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로마로 끌려온 유태인들에 대한 석방을 황제에게 탄원하기 위한 진정사절단의 일원으로서 로마를 방문했고(당시 그 사절단의 최연소 단원이었다) 같은 유대인 배우의 소개로 만난 네로 황제의 황후 포파이아 사비나를 만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