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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 폰 호프만스탈

후고 폰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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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후고 폰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 1874년 ~ 1929년)은 오스트리아의 시인 및 극작가이다. 빈에서 출생하였으며, 17살 때 《어제》를 발표하고 계속하여 서정시와 극을 발표하였는데, 특히 《바보와 죽음》은 유명하다. 당시는 자연주의 시대의 절정기였는데도, 그는 개인주의적, 귀족주의적, 유미주의적인 서정극을 발표하였다. 고전극을 번역한 《엘렉트라》와 오페라라 대본도 썼다. 특히 오페라 대본 《장미 기사》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곡으로 유명해졌다. 그 밖에 우화 소설 《그림자 없는 여자》와 서정적인 상징시를 모은 《시집》이 있다. 그는 독일 '세기말(Fin de siècle)'과 '빈 현대주의(Wiener Moderne)'의 가장 중요한 대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생애 출생과 청소년기 후고 폰 호프만스탈에게는 보헤미아계, 유대계, 롬바르디아계 선조들이 있었다. 그의 유대계 정통주의자였던 증조할아버지 이삭 뢰브 호프만(Isaak Löw Hofmann 1759-1849년)는 성공한 산업가였고, 페르디난트 1세에 의해서 귀족으로 서임되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에 견직산업을 도입했고, 대가족을 위해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그의 아들이자 상속자였던 아우구스틴 에밀 폰 호프만스탈(Augustin Emil von Hofmannsthal 1815-1881년)은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고, 1850년 시민 출신의 이탈리아인 페트로닐라 오르디오니(Petronilla Ordioni 1815-1898년)와 결혼했다.작가의 아버지인 후고 아우구스트 호프만(Hugo August Peter Hofmann 1841-1915년)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났고, 양친이 결혼식을 거행하고 나서야 비로소 합법적으로 호적에 올려졌다. 그는 법률을 공부했고, 빈 은행의 행장으로 승진을 했고, 공증인의 딸이었던 안나 마리아 조제파 폴로이트너(Anna Maria Josefa Fohleutner 1852-1904년)와 결혼했다. 1873년 '창업자 시대'의 파산이 발생했을 때 그들은 전 재산을 잃었다. 그 결과 그의 가족은 아버지의 수입에 의존을 하게 되었다. 후고 폰 호프만스탈은 자신의 돈을 직접 벌어야만 했고, 가난에 대한 지속적인 불안을 지닌 채 살았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출생에 대한 다른 측면에 관해서 그와는 다른 견해를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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