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rtag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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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다르타냥(d'Artagnan)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샤를 드 바츠 드 카스텔모르(Charles de Batz de Castelmore)는 1611년에서 1615년 사이 가스코뉴 뤼피아크 근교 카스텔모르 성(현 제르스 데파르트망)에서 태어나 1673년 6월 25일 마스트리흐트 공방전 도중 마스트리흐트 또는 물링언에서 사망한 프랑스의 군인이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다르타냥 로망스의 주인공으로, 오늘날에는 이 소설 내용 및 그 각색물들이 실존인물 다르타냥 백작보다 더 유명해져 있다. 생애 전반 프랑스 남서부 뤼파크 근교에서 베르트랑 드 바츠(Bertrand de Batz)의 아들로 태어났다. 샤를의 조부이자 베르트랑의 부친인 아르노 드 바츠(Arnaud de Batz)는 상인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한 신흥귀족으로, 아르노의 대에 카스텔모에 성을 한 채 구입했다. 샤를 드 바츠는 1630년대에 파리로 상경했고 이때부터 모친의 가문인 몽테스키우 가를 성씨로 이용하며 "프랑수아 드 몽테스키우 다르타냥"이라는 이름을 칭하고 다녔다. 다르타냥은 1632년 총사대에 들어갔는데, 외삼촌 앙리 드 몽테스키우 다르타냥 백작(프랑스 원수 피에르 드 몽테스키외 다르타냥 백작의 아버지) 또는 외삼촌의 친구인 장아르망 뒤 페리에 드 트루아비유 백작의 연줄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르타냥은 1630년대에 친위연대에 들어갔다. 친위연대는 1640년대 초 30년 전쟁에 종군하며 아라스 공방전, 에르쉬르라리스 공방전, 라베세 공방전, 바푸메 공방전 등에 참전했는데 다르타냥이 이 전투들에 참여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정황상 모든 전투는 아니더라도 하나 이상에는 참여했을 것이다. 총사대에 복무하면서 다르타냥은 쥘 마자랭 추기경의 비호를 받고자 했고, 마자랭 추기경은 1643년 수석국무장관이 되었다. 1646년 총사대가 해산되었고 다르타냥은 후원자 마자랭 밑에 붙어 있었다. 생애 후반 다르타냥은 제1차 프롱드의 난 이후 마자랭 추기경의 첩자 노릇을 했다. 다르타냥이 이 시기에 보여준 충성스러운 처신에 루이 14세는 그를 믿고 여러 비밀 임무를 맡겼다. 1651년 마자랭이 귀족들의 반발로 망명하자 마자랭을 따라가기도 했다. 1652년 다르타냥은 친위연대 소속 중위가 되었고 1654년 스트네이 전투, 랑크레시 공방전, 생기슬랑 공방전에 종군한 뒤 1655년 대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