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조(Cao C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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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조조(중국어: 曹操, 병음: Cáo Cāo 차오차오[*], 155년~220년 음력 1월 23일)는 중국 후한 말의 군웅, 정치인이다. 후한이 그 힘을 잃어가던 군웅할거의 난세에 비상하고 탁월한 능력으로 두각을 드러내, 여러 제후를 연달아 평정하고 중원의 대부분을 통일하여 삼국시대 위나라의 기틀을 닦았다. 시대의 영웅들 가운데 패자(覇者)로 우뚝 솟은 초세지걸(超世之傑)이라는 평가와 난세의 간웅(奸雄)이자 민간인과 포로를 학살한 인물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자는 맹덕(중국어: 孟德, 병음: Mèngdé 멍더[*])이며, 어릴 때 이름은 길리(吉利), 소자(小字)는 아만(阿瞞)이다. 사후 위가 건국된 후 추증된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이다. 위나라 역사가 배잠(裴潛)은 <난세를 대표하는 창천(蒼天)의 간웅(奸雄)>이라 평가하였다. 생애 출생 조조는 가신인 하후돈, 하후연과 함께 후한 예주 패국(沛國) 초현(譙縣) 출신이다. 중상시(中常侍, 환관의 한 직책) 조등(曹騰)의 양자인 조숭(曹嵩)의 아들이다. 《삼국지》〈무제기〉에 따르면, 전한 시대 유방(劉邦)의 심복으로 재상을 지낸 조참(曹參)의 후손인 조등은 환제 때 중상시를 맡았다. 이에 대해 《후한서 》〈조등전〉에 조참의 후예라는 기록이 없다는 점을 들어 조참 후예설을 위의 선양을 윤색하고 조씨 가문을 격상시키려는 데에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조등이 환관이라 아들이 없었으므로 조숭을 양자로 삼았다(《삼국지》〈무제기〉에 인용된 〈조만전〉의 일설에 따르면, 조숭이 본래 하후씨이며 하후돈(夏侯惇)의 숙부라는 이야기도 있다). 황건적의 난 184년 조조가 30살 때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다. 이때 기도위(騎都尉)에 임명되어 영천(潁川)에서 황건적을 토벌하고, 이 공적으로 제남(濟南)의 상(相)으로 승진, 거기에서 그는 역시 강력한 법을 세워 뇌물과 향락에 물든 상급 관리 8할을 파면하고, 당시 유행하던 사이비 종교나 미신 부류를 모두 금지한다. 그 후 동군 태수로 임명되지만 부임하지 않고 돌연 사퇴했다. 그리고 고향에서 사냥과 독서를 즐기며 은거 활동에 들어갔다. 금성의 한수(韓遂)와 변장(邊章)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수도 방위를 위해 전군교위(典軍校尉)로 임명된다. 그 무렵 영제가 죽고 대장군 하진(何進)과 원소는 환관 주살을 계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