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
이 스타의 새 소식이 올라오면 알림으로 받아보세요
날짜별 보기
누구인가요?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스웨덴어: Johan August Strindberg, 1849년 1월 22일 ~ 1912년 5월 14일)는 스웨덴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수필가, 화가다. 강렬한 개성을 지니고, 전세기 말의 모순과 동요에 번뇌하는 인간을 추구한다. 생애 스트린드베리의 일생을 일관한 불행은 그의 출생에 기인하며, 적어도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는 스톡홀름의 중산층 가정에 태어났으나 모친은 원래 호스티스와 가정부를 했던 여자였다. 그는 자신을 '하녀의 아들'이라 부르며 하층계급의 피를 이어받았음을 강렬하게, 그리고 거의 고의적으로 계속 의식했었다. 13세 때 모친을 잃고 부친은 곧 재혼했다. 여성에 대한 사랑과 증오의 상극은 이리하여 스트린드베리의 일생을 일관하게 된다. 1867년, 웁살라 대학에 입학, 아버지에게 원조를 받지 않고 자활을 하려고 했으나 좌절, 1학기만 마치고 대학을 중퇴했다. 이듬해 가정교사가 되어 들어간 집의 주인인 의사 람 박사의 영향으로 문학과 과학에의 흥미가 솟았으며, 의학을 배우기 위해 웁살라에 돌아오나 화학 자격시험에 실패, 계획을 포기했다. 그 후 배우가 되려고 연극학교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얼마 후 작가적 재능에 눈을 뜨고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스트린드베리의 최초의 중요한 작품은 1872년에 쓴 <올로프 신부>이다. 스웨덴의 종교개혁에서 취재한 이 역사극에는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및 입센의 <브랜드>의 영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왕립극장이 그 상연을 거부하여 스트린드베리의 염세적 경향을 더 짙게 했을 뿐만 아니라 권위에 대한 반항을 더욱 강하게 했다. 첫 번째 결혼 1874년, 스트린드베리는 왕립 도서관의 직원이 되어 약간이나마 생활의 안정을 얻었다. 이듬해 귀족의 아내 시리 폰에센을 만나자 곧 사랑에 빠지고 그녀는 2년 후 남편과 헤어져 스트린드베리와 결혼했다. 그러나 모두가 격렬한 개성의 소유자인 이들의 사이는 얼마 후 싸움이 그칠 사이가 없게 되었다. 이 동안의 사정은 비록 주관적인 서술이긴 하나 스트린드베리의 자전적 소설 <치인(癡人)의 고백>(1895)에 상세히 나온다. 1879년, 스톡홀름의 예술가 사회를 묘사한 소설 <붉은 방>으로 그는 새로운 사실주의 문학의 기수가 되어 명성을 획득했다. 이어 여배우가 된 아내를 위한 몇몇 희곡도 썼으며, 1883년 아내와 함께 스웨덴을 떠나 이후 16년 동안을 거의 외국에서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