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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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진형구(秦炯九, 1945년 9월 24일(1945-09-24) ~ )는 대한민국의 검사 출신 법조인이다. 제17대 대검찰청 공안부장과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등을 역임했다. 생애 1967년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1970년 제11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사법연수원을 1기로 수료했다. 검사에 임용된 이후에는 주로 기획통으로 활약했다. 활달하고 솔직 담백한 성품으로 업무 추진력이 남다르고, 명분보다 실리를 우선했으며, 검찰실무, 법무행정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이면서 후배 검사들의 신망을 얻었다. 1975년 2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형사법 전공으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9년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형사2부장, 1990년에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91년 서울지방검찰청 총무부장, 1992년 서울지방검찰청 조사부장, 1993년 서울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 1994년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장이 되었다. 1995년에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을 거쳐 1997년에 대검찰청 감찰부장이 되었고,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대검찰청 공안부장으로 영전했다. 공안경력 없이 1998년에 대한민국 대검찰청 공안부장으로 발탁된 배경에 김태정 검찰총장이 주창한 "`新공안'을 뒷받침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이때 "지하철 노조 파업을 깔끔하게 처리하여 신임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검찰내 경복고등학교 인맥의 좌장격으로 탁월한 친화력을 지녀 언론계와 정계에 지인이 많다. 대검찰청 공안부장으로 있으면서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때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소환 방침을 흘리는 등 "신중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9년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이 되었으나, 6월 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했던 조폐공사 파업 유도 발언으로 김태정 법무부 장관이 지휘 책임을 물어 해임되면서 진형구도 발언 당사자로서 대전고검장에서 직권 면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