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남(Jo Youn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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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조영남(趙英男, 1945년 5월 13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본관은 배천(白川)이다. 서울대학교 성악과에 재학 중이던 1968년 학비를 벌기 위해 미군 악단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표곡으로는 화개장터가 있다. 생애 초기 활동 본관은 배천(白川)이며, 황해도 평산군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1951년 한국 전쟁때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이 중공군을 피해 1.4 후퇴를 할 때 온 가족이 LST미국 군함에 몸을 실어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면으로 피란했고 어린시절을 그 곳에서 보냈다. 배우 백일섭과는 고등학교 동문이다. 어릴 적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조영남은 처음에 한양대학교에 입학했으나 개인사정으로 자퇴하고 1966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하였다. 서울대 재학 중 세시봉, 오빈스 케빈 등 캠퍼스 가수로 명성을 얻었다. 가수 활동 대학에 다니던 1968년에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삼아 미8군 부대의 주한 미 8군 쇼단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1969년에 영국 가수 톰 존스가 발표해 영국 싱글차트 2위까지 오른 팝 가요〈딜라일라 (Delilah)〉를 한국어로 번안한 곡으로 김인배 편곡집에 수록되어 1969년 대한민국 가요계에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데뷔 이후 대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가수로 활동하는 데에 어려웠기 때문에 잠깐 '고철(高哲)'이라는 예명으로 작사가 활동을 하였다.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고 세시봉이라는 음악 다방에서 윤형주, 이장희, 송창식, 김세환, 김민기 등 여러 가수와 함께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조영남은 세시봉 활동 때 김시스터즈 내한 공연에 초청되어 노래를 불렀는데,〈신고산 타령〉을 '와우 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 로 개사하여 불렀다가 미움을 사서 군대에 입대하였다.군 복무 중에 당시 대통령 박정희 앞에서 이애리수의〈황성옛터〉를 부를 것을 요청받았지만 분위기를 띄울 목적으로〈각설이 타령〉을 불러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 변호사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군대에 있을 때는 그림그리는 취미를 길러 화가 수준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현재 그림 대작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귀국 이후 1982년에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였고 가수 김도향과 함께 음악작업을 하면서 그와 함께 음반을 발매하며 활동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