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약용(Jeong Yak-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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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정약용(丁若鏞, 1762년 8월 5일~1836년 4월 7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저술가·시인이다. 본관은 나주, 아명은 귀농(歸農), 자는 미용(美庸),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문암일인(門巖逸人),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어린 시절 1762년 경기도 광주부 초부면 마재(마현(馬峴), 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94)에서 태어났다. 정약용이 태어난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한 남한강은 정선, 영월, 충주, 여주를 거쳐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한다. 현재는 생가터와 실학박물관 등 정약용 유적지가 잘 조성되어있다. 부친 정재원은 첫 부인 의령 남씨와 사이에 큰아들 약현을 낳았고, 둘째 부인인 고산 윤선도의 오대손녀인 윤소온(해남 윤씨, 조부 윤두서, 부친 윤덕렬)씨 사이에 약전, 약종, 약용 3형제와 딸 한 명을 낳았으며, 정약용은 4남 2녀 중 네번째 아들이었다. 정약용이 태어난 해에는 영조의 노여움을 산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죽는 일이 벌어졌다.(5월) 부친 정재원은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하였고 그해 6월에 태어난 정약용의 아호를 귀농(歸農)이라 지었다. 벼슬을 탐하여 당쟁에 휘말리지 말고 농촌에 귀의하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정약용의 선조들은 8대를 연이어 문과에 급제하여 모두 홍문록에 올랐는데 고조부, 증조부, 조부의 3대에 이르러서는 벼슬에 오르지 못했다. 아버지 정재원은 1762년 3월에 생원시에 합격한 후에는 대과에 응시하지 않았다. 출세에는 큰 욕심이 없었기에 사돈인 채제공이 대과 응시를 여러차례 권유하였으나 마다하였다. 뒤늦게 음관으로 벼슬길에 나간것은 생활고 때문이었으며 호조좌랑, 울산부사, 진주목사(정3품)까지 지냈다. 가문의 내력 본관은 압해(押海)였다. 지금은 전라남도 신안군에 속하는 섬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나주목에 속해있었기에 나주 정씨로도 불렸다. 조상들은 고려 말에 황해도 배천에 살다가 조선이 개국하자 서울로 이주했다. 11대 조부 정자급(丁子伋)이 승문원 교리를 지낸 이래 8대에 걸쳐 벼슬을 하였다.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정수강, 병조 판서를 지낸 정옥형, 의정부 좌찬성을 지낸 정응두, 대사헌을 지낸 정윤복,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정호선, 홍문관 교리를 지낸 정언벽, 병조 참의를 지낸 정시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