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여(Lee Gil-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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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이길여(李吉女, 1932년 6월 12일 ~ )는 대한민국의 의료인이자 교육자이다. 가천대학교 길병원 설립자로 가천대학교 총장, 경인일보 회장, 가천길재단 회장을 맡고 있다. 이길여 총장의 호(號) '가천(嘉泉)'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낸 류승국박사가 지어줬다. 생애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이길여 총장은 어려서부터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못 받고 죽어가는 것을 보며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시 ‘여자는 많이 배울 필요 없다’는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오직 의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공부에 매진하여 의사가 되었다. 여고 시절, 부친이 타계한 후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다. 대학 등록금과 학비를 내는 일이 여의치 않아 모친은 채 여물지도 않은 벼를 수확해 가마솥에 찌고 햇볕에 건조해 도정했다. 이렇게 만든 쌀을 그 지역에서는 '오리쌀'이라고 불렀는데 다 익은 벼를 수확할 때보다 30퍼센트 정도 손해를 본다. 9월 초에 내야하는 학비를 내기 위해 손해를 보더라도 돈을 마련해야 했던 것이다. 이 총장은 "대학에 다니는 동안 어머니는 해마다 오리쌀을 만들었다"며 "그때 고생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총장은 의대 졸업 후 수련 생활 내내 선진 의료에 대한 열망이 컸다. 1964년 32세의 늦은 나이에 미국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해 뉴욕으로 갔다. 당시 유학이나 이민을 가면 좀처럼 돌아오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한국을 떠날 때 꼭 돌아오라 던 조국의 환자들을 한시도 잊지 않은 그는 4년 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이길여 산부인과를 열고,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을 위해 ‘보증금 없는 병원’을 도입했다. 당시는 형편이 어려워 병원비를 못 내는 환자가 많아 병원마다 보증금을 받고 입원 시키던 시절이었다. 당시 보증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 기사가 있다. 1968년 10월 11일자 경향신문은 “부산의 모기독교병원의 경우 비영리기관으로 병원개설허가를 받고도 입원자는 8000원~1만2000원의 높은 보증금이 있어야 하고 진찰비도 150원씩 받고 있다” 고 보도했고, 1969년 2월 13일자 역시 경향신문은 “분초를 다투는 응급 중환자들이 보증금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 문전에서 비정하게 추방당하는 판국에, 돈 없이 병 고치기란 그냥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와 다름없다”고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