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양
이 스타의 새 소식이 올라오면 알림으로 받아보세요
날짜별 보기
누구인가요?
윤석양(尹錫洋, 1966년 ~ )은 1990년 10월 4일 당시 대한민국 육군 이등병 신분으로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내용을 폭로한 내부고발자 초반 1966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 후 서울로 이사와서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78년 어머니를 여의고 누나들의 보살핌 속에 고려고등학교를 졸업하여 1985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에 입학하였다. 1년간 한국외국어대학교 학보사에서 학생 기자로서 활동하였다. 장래 패기있는 신문 기자를 꿈꾸면서 학보사에서 활동하였으나, 뜻이 맞지 않아 그 후 학생운동을 시작하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운동권에서 적극으로 활동하여 1988년에는 CA 그룹 학생회장 후보 선거운동본부 조직국장, 혁명적노동자계급투쟁동맹(혁노맹)의 전신인 “혁명의 불꽃” 그룹 선동국장을 맡기도 하였다. 경기도 소래(현 시흥시) ‘작은자리’에서 일주일간 개최된 혁명적노동자계급투쟁동맹 결성 대회에 참가하던 1989년 8월 19일에 아버지가 사망하였다. 학생운동권 생활에 지쳐 가던 중 1990년 5월 1일 대한민국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하였다. 육군 제3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6주간 훈련받고 1990년 6월 20일 강원도 철원의 자대에 배치받아 소대원으로서 복무하던 중 7월 3일 연대 인사과장에게 불려갔다. 대공상담소라고 적힌 보안부대에 가서 계장 이승섭과 반장 김효수에게 혁명적노동자계급투쟁동맹 활동과 다른 조직원의 신상을 자백하라고 심문당하였다. 그 후 서울특별시에 있는 서빙고 분실로 옮겨 7월 5일부터 계장 이승섭과 부장 이덕렬과 반장 김효수 등에게 이상재, 정헌, 임찬수 등 군 투입자와 중앙위원 거주지에서 계속 심문당하였다. 대학교 앞에서 현장 활동을 거쳐 국군보안사령부 편에서 일하기로 신임을 얻고 8월 22일에는 장자동에 있는 국군보안사령부로 이동하였다. 서빙고 분실로 다시 와서 국군보안사령부 대공처 수사3과 분석반에서 과장 김용성, 계장 이승섭, 부장 이덕렬, 박대호, 조재은과 함께 근무하던 중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을 비롯해 민간인 1,303명을 사찰한 카드와 컴퓨터 디스켓 3통 등을 가방에 넣어 9월 23일 새벽에 국군보안사령부를 탈출하였다. 양심선언 국군보안사령부를 탈출한 윤석양은 한국기독교협의회를 찾아가 양심선언문과, 80일간의 국군보안사령부 체험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