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연산군(Yeonsangun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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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연산군(燕山君, 1476년 12월 2일 (음력 11월 7일) ~ 1506년 11월 30일 (음력 11월 6일))은 조선의 제10대 국왕(재위 : 1495년 2월 4일(1494년 음력 12월 29일) ~ 1506년 9월 28일(음력 9월 2일)이다. 성종의 맏아들로 적장자이다. 이름은 융(㦕)이며, 어머니는 폐비 윤씨이다. 재위 기간 중 무오사화를 일으켜 사림 세력을 제거하고, 갑자사화를 일으켜 폐비 윤씨의 폐위와 사사 문제에 관련된 자들을 대량 숙청하여 훈구 세력을 약화시켰다. 사림과 훈구 세력을 억누른후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등 언로를 막고 독단적인 정치를 자행하였으며, 가혹한 고문과 공포정치를 일삼았다. 그 결과 박원종, 성희안 등이 일으킨 중종반정으로 폐위되고 말았다. 연산군은 무당굿을 좋아하여 스스로 무당이 되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추었는데, 특히 처용무를 좋아해서 처용 가면을 쓰고 춤도 추었다. 처용무는 신라 때 잡귀를 쫓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담아 추었던 춤이었다. 생애 출생과 세자 시절 연산군은 1476년 11월 23일 (음력 11월 7일) 조선 성종의 장자이자 성종의 계비인 폐비 윤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무작금(無作金)이다. 그러나 후궁이 많았던 부왕 성종과 폐비 윤씨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고, 윤씨가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것을 기회삼아 후궁들과 인수대비는 윤씨를 왕비(王妃)에서 폐하고 궁궐에서 축출한다. 1483년(성종 14) 세자에 책봉되었고, 허침·조지서·서거정 등에게 학문을 배웠다. 성종에게는 정실 소생으로는 연산군 외에 제2계비인 정현왕후 소생 진성대군(훗날의 중종)이 태어났으나 성종이 승하할 당시에는 세자 이융의 나이가 18세였으므로 대세를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어려서 생모인 폐비 윤씨가 아닌 계모 정현왕후의 아들인 것처럼 성장하였다. 일설에는 이후 폐비 윤씨의 소생 연산군은 정현왕후를 생모로 알고 자라다가, 성종의 묘비명과 행장을 쓸 때 폐비 윤씨의 사사 사건을 알게 되면서 갑자사화를 통해 사림파를 학살하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설도 있다. 성종은 특별히 허침, 서거정, 조지서, 정여창 등에게 세자인 연산군을 가르치게 했다. 스승들 중 허침은 연산군에게 너그럽게 대하는 반면, 조지서는 정해진 대로 가르치려 하였다.
최근 일어난 일
조선 연산군 시대의 궁궐을 배경으로 펼쳐진 광대들의 푸진 한판 놀음을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멋지게 만든 영화 의 한 장면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사관의 말처럼 연산군은 '미치광이 같은 방탕'으로 인간사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