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Yangn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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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양녕대군(讓寧大君, 1394년 ~ 1462년 11월 8일(음력 9월 7일))은 조선 시대 초기의 왕자이자 정치인, 화가, 시인이다. 태종의 장남이자 적장남으로 어머니는 원경왕후이다. 개요 그는 조선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전주(全州), 성은 이(李), 휘는 제(禔), 자 후백(厚伯), 시호는 강정(剛靖)이다. 조선 효령대군, 세종, 성녕대군의 첫째 친형이다. 1404년(태종 4년) 왕세자에 책봉되고 1409년부터 부왕 태종이 정사를 보지 않을 때 정치에 참여했고, 이후 1412년에서 1413년까지 부왕 태종의 명에 따라 대리청정을 1년간 하였으며 명나라 사신 접대와 강무시솔행(講武時率行) 등 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부왕 태종과 마찰을 빚다가 유정현(柳廷顯) 등의 상소로 폐위되었다. 그 뒤 셋째 아들 충녕대군(忠寧大君)이 왕세자가 되었다. 세자 폐위 이후에도 자유분방한 활동이 문제가 되어 여러 번 탄핵을 당하였으나, 세종의 각별한 배려로 처벌을 받은 적은 없었다. 평소 시를 잘 짓고, 그림을 잘 그렸으나 작품들은 대부분 인멸되거나 실전되었다. 일설에는 왕세자 자리를 양보한 것은 그의 본심이었다는 설과 본심이 아니었다는 설이 양립하고 있다. 증(贈) 의정부좌의정 광산군(光山君)에 증직된 광산 김씨 김한로(金漢老)의 딸이자 본처인 수성군부인 김씨 사이에서 3남 5녀를 두었으며, 첩에게서 7남 12녀를 낳았다. 생애 출생과 왕자 시절 양녕대군은 1394년에 정안군과 군부인 민씨(뒤의 원경왕후)의 장남으로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양녕대군도 태어나기 전 형 3명이 있었는데, 조선을 건국하기 전 모두 사망하여 양녕대군이 장남이 되었으며 곧 1402년(태종 2년) 3월 8일 제(禔)란 이름을 받았고 그 해 4월 18일에 원자(元子)로 책봉되었다. 1404년 왕세자에 책봉되고, 1406년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왔다. 어려서 학자인 계성군 이래(李來)의 문하에서 효령대군, 충녕대군 등과 함께 수학하였으나 수업은 뒷전이고 참새나 바깥 풍경을 보며 다른 생각을 하였다 한다. 1407년(태종 7년) 입조하라는 명나라 성조(成祖) 영락제의 명을 , 그해 9월 25일 하진표사(賀進表使)로 명나라에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