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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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심훈(沈熏, 본명: 심대섭, 본명 한자: 沈大燮, 1901년 10월 23일~1936년 9월 16일)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소설가, 시인, 언론인, 배우, 영화 감독, 시나리오 각본가였던, 대한제국의 문학가 겸 영화인이다. 그는 한때 문학 및 영화 분야 이외에도, 영화 평론 집필과, 셰익스피어 희곡 작품의 번역 등에도 각각 잠시 손을 대었었다. 대한제국 경기도 과천군에서 3남 1녀 중 삼남으로 출생하였으며, 아명으로 삼보(三保)나 삼준(三俊)을 사용하였다. 친일 성격을 띠었던 가족들과는 달리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였고, 이로 인해 감옥에 투옥되고 학교선 퇴학 처분이 되었다. 이후 중국에서 잠시 체류하기도 했으며, 귀국 후에는 동아일보의 기자로 활동하였다. 1927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 공부를 하여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동아일보에서 브나로드 운동을 진행할 때에는 장편 소설 《상록수》를 집필해 당선되었으며, 이듬해 갑자기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하였다. 생애 1901년 10월 23일(음력 9월 12일), 대한제국 경기도 과천군 하북면 흑석리(지금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심훈의 집안은 '친일적 시류에 순응하는 전통적인 양반 가문 출신의 중산지주 계급'으로, 심훈의 두 형은 친일파였고, 심훈의 첫번째 부인은 일본으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청풍군 이해승(淸豐君 李海昇)의 누이 이해영(李海映)이었다. 경성제1고등보통학교(현 서울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해 학교를 다니던 심훈은 4학년이던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게 되고, 3월 5일 남대문 학생시위에서 구속되어 8개월형을 받아 투옥되었고, 학교에서도 퇴학 처분을 받으면서 집안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대학 이듬해 1920년에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세인트 존스 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1921년 결국 중퇴한 뒤, 중국 항저우로 가서 저장 대학교 극문학과로 재입학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듬해 1922년에 중퇴하고, 극문회를 조직하였다. 중국에 망명하는 동안 베이징에서 신채호와 이회영 등과 교우하며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을 부르짖었다. 1924년 중국에서 돌아온 심훈은 《동아일보》에 사회부 기자로 입사하였으며, 1926년에는 《탈회》를 연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