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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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병자호란(丙子胡亂)은 1636년 12월 8일(양력 1월 3일)부터 1637년 1월 30일(양력 2월 24일)까지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청나라의 숭덕제가 만리장성을 공격하기 이전에 배후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 조선을 침공하였고, 인조와 조정이 남한산성에서 항전하였으나 청의 포위로 인한 굶주림과 추위, 왕실이 피난한 강화도의 함락, 남한산성의 포위를 풀기 위한 근왕병의 작전 실패 등으로 말미암아 항복하였다. 동아시아 역사에서는 명청교체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며, 조선으로서는 짧은 전쟁 기간에도 불구하고 수십 만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 그 사회적 피해가 유례없이 막심하였다. 개요 조선은 정묘호란 이후 후금과 형제의 관계를 맺었으나, 강화조약에 따라 명나라의 관계에는 변함이 없었다. 숭덕제가 칭제를 결심하고 조선에 보낸 사신은 인조와 접견을 못했고 숭덕제의 황제 즉위식에 참석한 조선 사신은 숭덕제에게 배례를 하지 않았다. 조선이 친명정책을 변경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숭덕제는 명과의 전면전 전에 조선을 확실히 굴복시켜 배후의 위협을 제거하고자 1636년 12월 2일, 12만 군사로 조선을 향해 출진했다. 12월 8일, 청나라 선봉대가 압록강을 건너옴으로서 침공이 시작되었다. 당시, 조선의 대청 방어전략은 청야견벽(淸野堅壁)으로, 강한 청의 기병과 직접 맞부딪치는 것을 피하고 침공로 주변의 성에 군사를 집결하여 공성전을 강요함으로서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명이 아무리 약화되었더라도 이를 배후에 두고서는 장기전을 벌이기 어려운 청의 약점을 노린 것으로, 유사시에는 수군이 약한 청의 공세를 피할 수 있도록 강화도에 파천하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정묘호란 당시 인조가 강화도로 파천하는 것을 지켜본 경험이 있는 청은 조선군이 지키고 있던 산성을 우회해서, 한양으로 신속히 남하하여 인조와 조정이 강화도로 피난하는 길을 차단하였다. 봉화를 통한 긴급 통신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조정이 청군의 침공을 인지한 것은 12월 13일이었으며, 인조는 청군이 한양에 거의 접근한 12월 14일에서야 파천에 나섰으나 강화도로 향하는 길이 이미 차단당한 이후라 남한산성으로 피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