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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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박지만(朴志晩, 1958년 12월 15일 ~ )은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셋째 자녀)이며, 현 이지(EG) 그룹의 회장인 전문 기업 경영인이다. 육군 사관학교를 제37기로 졸업한후 5년간 포병장교의 분파 중 하나인 방공장교로 빌딩 GOP에서 군복무를 하였으며 1986년 육군대위로 예편했다. 이후 마약 투약으로 6번 입건되어 5차례 유죄 판결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바가 있다. 생애 출생 서울특별시 신당동에서 육군 제1군 사령부 참모장인 박정희 소장과 부인 육영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위로 3명의 누나를 둔 외아들이다. 이 중 큰누나인 박재옥은 육영수의 딸이 아닌, 전처 김호남의 딸이다. 둘째 누나가 박근혜, 셋째 누나는 박근영이다. 서울청운국민학교, 배문중학교를 거쳐 중앙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1974년, 16살이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 광복절 기념식이 있었던 장충동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어머니 육영수가 문세광에게 암살당했다. 이 일로 인해 박지만은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육사 생도 시절 1977년에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제37기로 입교하였다. 육사 진학동기는 아버지 박정희의 뜻이 아니라 고3 시절 담임 선생님의 권유와 함께 박지만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박지만의 본래의 목표는 서울대 진학이었으나 고1때 어머니가 돌아가신후 방황하며 성적이 하락했기 때문에 진로를 변경했다고 한다. 또한 육사에 입학하게 되면 더 이상 경호원들에게 둘려쌓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속박된 청와대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도 한다. 육사 생도시절 박지만은 그의 2년 선배인 노병천(육사 35기)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되었고 노병천을 많이 따르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박지만은 생도시절 심한 일탈행위를 많이 했으며, 더 큰 문제는 육사 교관들이나 육사교장 조차도 훈육에 엄두를 내지 못해 여러 사람을 힘들게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노병천은 그의 저서 《박정희 마지막 신앙고백》을 통해 밝힌바로는, 노병천이가 훈육차원에서 박지만에게 20차례 정도 구타를 하였다고 한다. 이후 박지만은 정신을 차리고 모범생도가 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박지만에게 또 한번 시련이 찾아온다. 생도 3학년 시절인 1979년 10월 26일에 아버지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사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