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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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박순천(朴順天, 1898년 10월 24일~1983년 1월 9일)은 일제강점기의 교육자이며 대한민국의 저술가, 여성운동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정치인이다. 경상남도 동래군과 경상남도 기장군과 경상북도 고령군을 거쳐 서울특별시에 거주한 그녀는 1950년 대한부인회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부산과 서울에서 거듭 당선되면서 2, 4, 5, 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72년 유신체제 출범 이후 친유신, 친5공 인사로 변신하여 송건호 등 재야인사로부터 변절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생애 학창시절과 교육활동 1898년 10월 24일(음력 9월 10일) 경상남도 동래군에서 한학자인 박재형의 딸로 태어났다. 한때 경상남도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12세에 아버지가 기장읍내에 나갔다가 일본인에게 상투가 잘린뒤 모욕당하고 돌아왔는가 하면 기독교 교인이던 어머니가 태극기를 꺼내어 담장아래에 묻으면서 통곡하는 것을 보고 나라 잃은 설움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교육에 투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부산진일신여학교를 졸업 하고 마산 최초의 여학교였던 의신여학교 교사로 부임, 성경 채플담당 교사와, 생리학 겸 동물학 교사가 되었다. 당시 일인교사는 24원의 월급을 받고 그는 12원의 월급을 받아 일본인 교사와의 차별대우에 항의, 싸우기도 했다. 여성 독립운동 독립운동과 수배 생활 1919년 2월 박명련은 일본에서 귀국, 마산에 체류하고 있던 이갑성의사와 만나게 됀다. . 이갑성은 일본제국 유학생들이 2월 8일 일본 동경에서 2·8 독립선언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주고 서울에서 3월에 거사 계획이 있을 것임을 알려주고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줄 것을 부탁받았다. 3월 1일 3·1 운동이 각지에서 발생하자, 박순천도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3월 5일 박순천은 많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마산장에 나온 장꾼들에게 나눠 주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며 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 사건으로 일본관헌에게 체포, 신마산에 있는 일본헌병대로 끌려가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3월 12일 한석규목사와 시인 이은상, 이승규 목사(이은상의 아버지) 등의 신원보증을 받고 가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