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胡耀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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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후야오방(중국어: 胡耀邦, 병음: Hú Yàobāng, 한자음: 호요방, 1915년 11월 20일~1989년 4월 15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1981년부터 1982년까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를 지냈다. 문화대혁명 시기 이후 덩샤오핑의 측근으로 부상했다. 1930년대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문화대혁명 시기에 숙청과 복권을 거듭했다.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덩샤오핑이 부상하면서, 화궈펑의 실각과 개혁개방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자유시장 개방과 정치 개혁으로 인해 당내 보수파와 원로들과 대립했으며, 1986년과 1987년에 걸쳐 일어난 중국의 학생운동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을 비판받아 1987년에 실각하고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남았다. 후야오방은 1989년 4월 15일 사망했다. 후야오방을 추모하고 그의 유산을 중국 정부가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으며, 이는 1989년 천안문 사건으로 이어졌다. 2005년에 중국 정부는 후야오방 탄생 9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와 이력에 대한 검열을 해제했다. 장시성 궁칭청시에 묻혔다. 경력 중국 공산당 입당 훗날 1952년에 중공 인민해방군 지상군 륙군 소좌 계급으로 전역한 후는, 그 혈통이 하카계 출신으로 후난 성 창사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1928년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공청단)에 가입했고, 뒤이어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다. 후에 마오쩌둥과 주더가 이끄는 홍군에 가담하여 초급장교로 복무하였다. 1931년부터 1935년까지 마오와 주더를 대신하여 당권을 장악한 친소련성향의 지도부("28인의 볼셰비키")는 마오에 충성하던 그의 성향을 불신하여 체포하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다른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도움으로 석방되었고, 그후 장정에 참여하지 못할 뻔 했으나, 작전 중 부상을 입은 뒤 주위의 도움으로 후송되었다. 국민당 포로 이후 중국공산당 장궈타오 부대의 일원으로서 장정에 참가하였지만, 그의 부대가 중국 정부에 충성하는 회족 마부팡 군벌군에게 패해 포로가 되었다. 이후 마부팡의 영지에서 노역을 하다가, 다른 포로와 함께 탈주해서 공산당 지도부가 있던 옌안으로 복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