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 검증 「대하 드라마와 혼노지의 이상 16」. 이에야스 향응으로 노부나가 스스로 선을. 혼노지에서의 전쟁 장면도 없는 이야기 부제는 「혼노지가 이상하다」【토요토미 형제! 만끽 리포트] 2017년 '너 성주 나오토라'편(사라이.jp) - Yahoo!뉴스

本能寺の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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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ほんのうじのへん))은 일본 덴쇼(天正) 10년(1582년) 음력 6월 2일(양력 6월 21일) 아침,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가 모반을 일으켜 교토(京都)의 사찰 혼노지(本能寺)에 머무르고 있던 자신의 주군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습격한 사건이다. 노부나가는 잠들어 있던 와중에 기습을 당했고, 자신이 이미 포위되었음을 깨닫고 절에 불을 질러 자결하였다. 노부나가의 적남(嫡男)으로 오다 가(織田家)의 당주였던 노부타다(信忠)도 습격을 당했고, 자신이 숙박하고 있던 묘카쿠지(妙覚寺)에서 니조고신조(二条御新造)로 옮겨서 항전하였으나 마찬가지로 건물에 불을 지르고 자결하였다. 노부나가와 노부타다, 부자의 죽음으로 오다 정권(織田政権)은 와해되었으나, 미쓰히데도 6월 13일의 야마자키 전투(山崎の戦い)에서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에게 패하고 죽었다. 이 사건은 히데요시가 대두하여 도요토미 정권(豊臣政権)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고, 센고쿠 시대의 난세는 종언으로 향하게 된다. 때문에 혼노지의 변은 센고쿠 시대라는 일본 역사의 한 대목 안에서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미쓰히데가 왜 모반을 일으켰는가에 대해서는 일본 학계에서도 의론이 분분하여 정설이 없다. 여러 가지 다양한 설들이 제기되어 있다(각각의 설에 대해서는 정변의 요인을 참조하시오). 배경 덴쇼 10년(1582년)3월 11일에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 ・ 노부카쓰(信勝) 부자를 덴모쿠 산(天目山)에서 몰아붙여 자결로 몰아간 오다 노부나가는 3월 27일, 이름 높던 다카토 성(高遠城)을 공략하는데 성공한 아들 노부타다에게 포상과 함께 "(노부타다 너에게) 천하를 지배할 권한도 주리라"(天下支配の権も譲ろう)라는 말까지 하면서 칭찬하였다고 한다. 노부나가는 고후(甲府)에서 답례로 찾아온 노부타다를 스와(諏訪)에 남겨 두고 군세를 현지에서 해산시킨 다음, 약간의 수행원(供廻り, 도모마와리)만을 데리고 가이(甲斐)에서 도카이도(東海道)에 이르는 길을 따라 후지산(富士山) 산기슭을 바라보면서 유유히 귀국길에 오른다. 4월 3일에는 신푸 성(新府城)의 불타버린 자취를 보고, 오랫동안 자신의 가장 큰 숙적이기도 했던 신겐(信玄)이 살던 거관(居館) ・ 쓰쓰지가사키 저택(躑躅ヶ崎館) 터 위에 지어진 임시로 지은 처소에 잠시 머물다가, 4월 10일에 고후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