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가리 마타이(Wangarĩ Maat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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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왕가리 무타 마타이(Wangari Muta Maathai, 1940년 4월 1일~2011년 9월 25일)는 케냐의 환경 운동가, 정치인, 대학 교수, 정치 운동가이다. 그녀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민주주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200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2011년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71세. 어린 시절과 교육 중학교와 고등학교 마타이는 1940년 4월 1일 케냐 중부 고원에 위치한 니에리의 리테 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케냐는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그녀의 가족은 그 곳에서 여러 세대를 거쳐서 살았다. 그녀는 케냐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민족인 키쿠유 족의 딸로 태어났다. 용가리 마트하리 가톨릭 선교회가 운영하는 세인트 세실리아의 중학교로 입학했으며 이 곳에서 4년을 공부하였다. 이 기간 동안 왕가리 마타이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으며 로마 가톨릭신앙을 갖게 되면서 기독교식 이름인 메어리 조세핀으로 불렸다. 이 곳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마타이는 계속된 마우마우 폭동에서 피할 수 있었으나, 그녀의 어머니는 리테 수용소에 강제로 이주하게 되었다. 1956년에 중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케냐 리무루에 있던 유일한 여학교이자 가톨릭 여자 고등학교인 로레토 여자 고등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았으며 1959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간다 캄팔라에 있는 동아프리카 대학교에 진학을 계획하고 있었다. 대학교 그러나 영국의 식민지 지배가 끝이 다가오자 톰 엠보야를 비롯한 케냐의 정치인은 유망한 학생들에게 서구식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당시 미국의 상원 의원이었던 존 F. 케네디도 이러한 정책을 지지했고 마타이는 약 300명의 장학생 중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택되어 1960년 9월 미국에서 대학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학문을 가르치다 그 후 마타이는 미국과 독일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며 1964년 마운트 세인트 스콜라스티카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나이로비에 있는 나이로비 대학으로 돌아가기 전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동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박사 학위(수의학)를 취득했다. 그녀는 1971년에 나이로비 대학의 해부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후에 학장으로 임명된다. 그녀는 2002년 예일 대학교의 지속 가능한 삼림을 위한 국제 학회에 객원 교수(Visiting Fellow) 초청 자격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