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터 울브리히트(Walter Ulbr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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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발터 에른스트 파울 울브리히트(독일어: Walter Ernst Paul Ulbricht, 1893년 6월 30일 ~ 1973년 8월 1일)는 독일의 공산주의 정치인으로, 독일 공산당 지도자 중 한명이었으며 훗날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당수가 되어 동독의 국가원수로 일했다. 울브리히트는 독일 제국 시대부터 활동한 고참 마르크스주의자였으며, 1912년에 독일 사회민주당에 입당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정치 경력을 쌓았다. 그는 유명한 반전 인사로, 제1차 세계 대전에 반대하며 독일 독립사회민주당을 이끌었으나, 1920년 독일 공산당으로 소속을 옮겼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이 독일을 장악하고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하자 울브리히트는 프라하로 망명하였으며, 나중에는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모스크바로 이주한 울브리히트는 에른스트 텔만을 견제하였고 울브리히트 집단을 조직해 그의 지지자들과 종종 대립하였다. 소련에서 울브리히트는 에른스트 텔만의 죽음과 독일 공산당원에 대한 이오시프 스탈린의 대숙청을 방관하였다. 그러나 나치 독일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위반하고 소련 침공 작전을 개시하자 울브리히트는 독일 국민들에게 반파시즘 저항을 호소하며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추축국의 분쇄를 촉구하였다. 그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붉은 군대에 항복한 독일군 포로들이 나치 독일에 대한 반제국주의적 공세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의 설득으로 대다수의 독일 포로들이 반파시스트로 전향했고 1944년부터 붉은 군대의 일원으로 합류해 소련의 여러 군사 작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1945년 소련에 의해 베를린 해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귀국하였고, 소련의 독일 점령 지역에서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을 조직하였다. 1949년 동독이 수립되면서 각료희의 의장으로 임명되었고, 1950년에는 사회주의통일당 서기장으로 선출되었다. 1960년 대통령 빌헬름 피크가 사망하자 승계받으며 국가원수가 되었다. 어린 시절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울브리히트는 8살 밖에 안되어 학교를 떠나 가구 제작인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 동안에 1915년 육군에 입대하여 발칸반도와 동부 전선에서 둘다 복무하였으나 전쟁 말기에 탈영하여 독일 11월 혁명에 참가하였다. 1920년 독일 공산당의 당원이 되어 빠르게 그 진급들을 통하여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