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터 먼데일(Walter Mond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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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월터 프레더릭 "프리츠" 먼데일(영어: Walter Frederick "Fritz" Mondale, 1928년 1월 5일 ~ 2021년 4월 19일)은 미국의 정치인이였다.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제42대 부통령을 지냈고, 1984년 민주당 소속 대통령 후보로 나섰으나, 낙선하였다. 경력 월터 먼데일은 미네소타주 남부의 작은 도시인 실론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애칭으로 프리츠(Fritz)라는 이름도 널리 사용하여, 그는 프리츠 먼데일로도 알려져 있다. 세인트폴의 매캘러스터 칼리지에서 공부하다가 미네소타 대학교로 옮겨 정치학을 전공했다. 이때부터 미네소타 주의 민주당 자매정당인 미네소타 민주농민노동당에서 활동했으며, 당시 미니애폴리스 시장이던 휴버트 험프리와의 인연도 시작됐다. 1948년 휴버트 험프리의 상원의원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켄터키주의 포트 녹스 부대에서 2년간 군복무를 했다. 군복무 후 미네소타 대학교 법과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그 후 민주농민노동당과 휴버트 험프리의 일을 계속 도왔으며, 능력을 인정받아 1960년 공석이던 미네소타주 검찰총장에 임명되어 1964년까지 재직했다. 1964년 휴버트 험프리가 부통령에 당선되자, 휴버트 험프리의 미네소타주 연방 상원의원 직의 승계자로 지명되어 미국 중앙 정치무대에 등장하였다. 1964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고, 1972년 재선되었다. 상원에서 자유주의파에 속했고, 재무, 예산, 노동, 소비자운동 분야에서 활동했다. 197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지미 카터는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먼데일을 지명했다. 카터와 먼데일 조는 공화당의 제럴드 포드와 밥 돌 조를 제치고 승리했으며, 이로써 1977년 1월 먼데일은 제42대 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종전까지 명목상의 직책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받던 미국 부통령의 권한을 확대하고자 했다. 특히 카터의 외교정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세계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였다. 또한 대통령과 의회 및 행정부와의 모범적인 중재자 역할을 정립하는 업적을 남겼다. 카터와 먼데일은 1980년 대통령 선거전에도 다시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었으나,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H. W. 부시 조에게 패했다. 이로써 먼데일은 4년 만에 부통령직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