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바리스트 갈루아(Évariste Galo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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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에바리스트 갈루아(프랑스어: Évariste Galois 프랑스어 발음: [evaʁist ɡalwa], 1811년 10월 25일~1832년 5월 31일)는 프랑스의 사회운동가이자 수학자이다. 갈루아는 10대 시절에 수학의 오랜 난제였던 5차 이상의 고등 다항식을 거듭제곱근의 해로 나타낼 수 있는지 판별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밝혔다. 이 과정을 통해서, 갈루아는 수열을 특정한 수학적 조건에 따라서 묶는 방법을 가리키는 군(프랑스어: groupe)이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였다. 갈루아의 연구는 추상대수학의 주요 분야인 갈루아 이론과 군론의 기반이 되었으며, 하위 분야인 갈루아 접속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당시 프랑스는 루이 필리프 1세가 왕으로 있던 군주제였는데, 갈루아는 이에 반대하는 급진적인 공화주의자였다. 20세가 되던 해에 술집 작부가 빌미가 된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서 결투 끝에 복부에 총상을 입고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생애 어린 시절 갈루아는 1811년 10월 25일 아버지 니콜라가브리엘 갈루아(프랑스어: Nicolas-Gabriel Galois)와 어아델라이드마리 드망트(프랑스어: Adélaïde-Marie Demante)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 학교의 교장이었으며, 시를 짓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공화주의자였으며, 부르라렌(프랑스어: Bourg-la-Reine) 지역 자유당의 당수였고, 루이 18세가 왕위에 복위된 1814년 부르라렌의 시장이 되었다. 어머니는 법률가의 딸로 라틴어로 된 고전 문학을 읽을 수 있었고, 갈루아는 12세가 될 때까지 어머니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갈루아는 10세 때에 프랑스 랭스에 있는 학교에 입학하기를 희망하였으나, 어머니는 아직 집에서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였다. 1823년 갈루아는 리세 루이르그랑이라는 한 학교에 입학하였다. 갈루아가 입학한 해에 정치적인 문제로 100 여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퇴학당하는 일이 있었지만, 갈루아는 별다른 문제없이 학교 생활을 하였고, 2학년 때에는 라틴어 과목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4세가 될 무렵에 갈루아는 학업에 흥미를 잃었고, 자신의 목마른 지식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유일한 과목인 수학에만 몰두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루아의 수학 성적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