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뤼그베 리(Trygve 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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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트뤼그베 할브단 리(노르웨이어: Trygve Halvdan Lie, 1876년 7월 16일 ~ 1952년 12월 30일)는 노르웨이의 정치인으로 1946년부터 1952년까지 초대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노르웨이 정부의 대표로서 리는 유엔에서 개최된 회의들에 깊이 관여하였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역할은 1950년 한국 전쟁때 진가를 발휘하였고 다국적 군대들을 결성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이에 대비하여 그는 또한 이스라엘과 인도네시아가 국가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리는 유엔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인류의 대다수에 관한 하나의 공동적 사업과 범용 수단은 유엔이다. 그 가능성들의 인내심 있고 구조적인 장기적 이용이 세계에 진실되고 안정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진술하였다. 어린 시절 당시 크리스티아니아로 알려진 오슬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마르틴은 트뤼그베가 어렸을 때 미국에서 목수로 일하러 가족을 떠났다. 그의 모친은 하숙집을 운영하였다. 트뤼그베 리는 매우 어린 나이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11년 15세의 나이에 리는 노르웨이 노동당 청소년 기구에 가입하였다. 8년 후에 리는 노르웨이 노동당의 서기에게 보조인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오슬로 대학교에서 자신의 법학 학위를 겨우 완료하였다. 1921년 혜르디스 예르겐센에게 결혼하여 3명의 딸 - 시셀, 구리와 메테를 두었다. 번창하는 정치 경력 1922년부터 1935년까지 리는 노르웨이 노조 연합에 법률 고문으로 일하였다. 상승 궤도에 지속한 그는 1936년 노르웨이 노동당의 국가 사무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그해 그는 노르웨이 의회에 선출되었다. 1935년 요한 뉘고르스볼에 의하여 노동당 정부가 형성되었을 때 법무 장관으로 임명되어 1939년까지 이 지위를 보유하였다. 후에 1939년 7월부터 9월까지 통상산업장관,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에 해운 공급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40년 노르웨이가 독일에 의하여 침입되었을 때 리는 노르웨이의 전체 선박들을 연합국의 항구들로 건너가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 활동은 노르웨이 해군을 구하였다. 1940년 6월 리는 잉글랜드로 이주하였다. 그는 12월 노르웨이의 임시 대행 외무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41년 2월 노르웨이 망명 정부의 외무 장관이 되었다. 1945년 리는 노르웨이 의회로 재선되었다. 그해 후순에 그가 일부였던 정부가 사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