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도르 지프코프(Todor Zhivk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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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토도르 흐리스토프 지프코프(불가리아어: Тодор Христов Живков, 문화어: 또도르 쥡꼬브, 1911년 9월 7일~1998년 8월 5일)는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자 독재자로 35년 동안 불가리아의 국가원수로서 군림했다. 지프코프는 불가리아 역사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국가 원수이자 비왕실 출신 지도자이며, 일생동안 불가리아 공산당 제1비서, 불가리아 인민공화국 총리, 불가리아 인민공화국 국무원 국무위원장 등 다양한 직함을 사용했다. 원래 속기사였던 지프코프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불가리아 공산당에 돌연 입당하여 반파시즘 운동에 합류했고, 1943년 불가리아 인민군의 소피아 작전사령부 탈환과 1944년 불가리아 혁명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워 1945년에 불가리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모함과 음해도 서슴치 않았다. 일례로 1949년 불가리아 공산당의 오랜 지도자이자 노련한 정치가인 게오르기 디미트로프가 사망하자 유력한 국가원수 후보인 트라이초 코스토프를 반역죄 혐의로 몰아 사형시켰으며, 1954년에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방법으로 당시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의 국가원수였던 벌코 체르벤코프를 지도자에서 해임하고 그 자리를 본인이 차지하기도 하였다. 이후 1956년 그는 기회주의자로서 니키타 흐루쇼프의 반스탈린주의 노선에 편승했고 자신에 반대하는 중앙위원회 위원을 감금, 고문, 처형하는 등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제거하며 불가리아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규모 반대파 숙청을 몰고왔다. 그의 반대파 탄압은 1965년에도 있었는데 불가리아 공산당의 원로 당파이자 유격대 영웅들이 그를 수정주의자라고 비판하자 쿠데타를 조작해 반역죄로 공산당 당원들에 대한 대규모 추방, 처형을 실시하여 민심을 잃었다. 경제적으로 지프코프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병존을 꾀했는데 이 정책이 시행되는 동안 대규모 민영화가 이루어져 경제 위기와 극심한 빈곤을 초래하여 국제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다. 비록 지프코프의 독재 기간동안 부정적인 측면이 더 컷지만 기대수명을 늘리고 영아사망률을 낮추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1970년대에는 잠시 불가리아가 지정학적인 이유로 소련의 전자제품 생산 기지가 되면서 주목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