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벨리스크 대리석받침 조각. 조공을 받는 테오도시우스1세(좌상), 경주승자에게 씌워줄 월계관을 들고 있는 왕의 모습(좌하), 경주를 관람하고 있는 황제와 가족, 경호원(우상), 오벨리스크 세우는 모습을 관람하는 황제와 가족들(우하).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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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테오도시우스 1세 또는 테오도시우스 대제(라틴어: Flavius Theodosius, (347년 1월 11일~395년 1월 17일)은 379년부터 395년 죽을 때까지 로마 황제였다. 그라티아누스 황제로부터 동로마 제국을 다스릴 것을 임명받은 이후 서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죽은 후, 동로마와 서로마 모두를 통치한 마지막 황제였다. 그가 죽은 후 로마 제국은 동로마와 서로마로 완전히 분리되어 다시는 통일되지 않았다. 그는 또한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국교로 만들었다. 그의 강력한 기독교 부흥 정책 때문에 그는 기독교계 역사가들로부터 ‘대제(大帝)’의 칭호를 받았다. 생애 생애 초기 테오도시우스는 히스파니아에서 같은 이름의 아버지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대대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는 당시 유능한 로마 제국의 장군으로 368년 브리타니아에서 일어난 야만족의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했다. 테오도시우스도 이때 아버지를 따라 복무하였고 이후 계속 로마군에 복무하다가 374년 모에시아에서 로마군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아버지가 궁정 내 음모로 불명예스럽게 처형당하자 공직에서 은퇴하여 히스파니아의 가문의 영지로 은퇴해 버렸다. 거기서 히스파니아 여자와 결혼하여 맏아들 아르카디우스를 낳았다. 황제 등극 378년 8월 9일, 동로마 제국의 발렌스가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고트족에게 대참패를 당하고 전사한 직후 당시 서로마 황제이던 그라티아누스가 히스파니아에서 칩거하던 테오도시우스를 불러들여 발칸반도를 맡겼다. 테오도시우스가 야만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군사적 성공을 거두자, 그라티아누스는 379년 1월 19일 그를 공동황제로 선포하고 다키아, 마케도니아 등의 속주를 포함한 제국의 동부지역을 통치하게 했다. 이후 그라티아누스가 제위 찬탈자인 마그누스 막시무스에게 패하여 죽고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밀라노의 궁정에서 쫓겨오자 테오도시우스는 마지 못해 막시무스를 서방의 황제로 인정했으나 388년 발렌티니아누스와 함께 막시무스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392년 발렌티니아누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갈리아의 섭정이던 아르보가스트가 유게니우스를 새로운 서방 황제로 추대하자 테오도시우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