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Syngman R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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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이승만(李承晚, 1875년 3월 26일 ~ 1965년 7월 19일) 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의 제 1~3대 대통령이다. 본관은 전주로 왕실 후손이며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서훈되었다. 아명은 승룡(承龍), 호는 우남(雩南)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황해도 평산군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 시절 고종황제가 설립한 《독립신문》과 《협성회회보》 주필, 독립협회 활동 등 계몽운동을 하였고, 왕정 폐지와 공화국 수립을 도모하였다는 반역의 죄목으로 한성감옥에 투옥됐다. 수감 시절 개신교로 개종하고, 옥중에서 계몽활동을 하고, 《독립정신》을 저술하였다. 대한제국 말기 헐버트의 상서로 고종황제가 특별히 사면하였다. 고종은 황실내탕금을 지원하여 밀사로 도미시켜 조미수호조약의 유효성을 확인하라는 특명을 내렸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미국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5년에 걸쳐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학사,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12년에 미국으로 망명, 하와이에서 한인학원과 한인학교 등을 운영하며 실력양성운동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사회주의운동가들 사이에서 독립운동 방법을 놓고 의견이 갈라졌을 때 그는 국내의 사정을 외국에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외교 독립론을 주장하였다. 대한국민의회, 상해 임시 정부, 한성정부 등 각지에서 수립된 임시 정부의 수반을 거쳐 1919년부터 1925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1919년부터 광복 때까지 구미위원부 위원장, 주미외무행서 외무위원장,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주로 미국에서 외교 중심의 독립운동을 펼쳤다. 일제강점기 중후반에는 《일본내막기(Japan Inside Out)》를 저술하는 등 일본의 미국 침략을 경고하였고,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제국의 패전을 확신하고 일제가 망하는 즉시 한국이 빼앗긴 주권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식 승인해야 된다는 외교활동을 하였고, 미국의 소리 초단파 방송을 통해 고국 동포들의 투쟁을 격려하였으며, 임시 정부와 미군 OSS 간의 한미군사협력을 주선하였다. 1945년 8월 광복 후 김구와 함께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을 주도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장을 지냈으며, 그 해 대한민국 제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