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자 샤 팔라비(Reza Sh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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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레자 샤 팔라비(페르시아어: رضا پهلوی, 1877년 3월 16일 ~ 1944년 7월 26일, 재위 : 1925년 ~ 1941년)는 이란 제국의 초대 샤이다. 생애 군인이 되기까지 레자는 팔레비가 출신으로서, 부친은 육군 대령 압바스 알리 칸이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어서 어머니가 그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의 가족들은 수도인 테헤란으로 이사를 갔고, 그의 어머니는 그를 교육을 시키는 일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훗날, 육군에 입대하여 러시아인 교관으로부터 많은 훈련을 받았다. 그는 사병 때부터 총명하고 재주도 좋아서 지휘관들도 부러워하였다. 그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장교가 되었다고 한다. 국내의 정치 상황 이 시기에 이란은 입헌 군주국이 되었으나, 1909년까지 정치가 상당히 불안하여 노동자들은 가난하고, 빈민들은 굶어죽는 자가 생겨날 지경이었다. 이란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어려운 경제력 때문에 전쟁에 참전할 생각이 없었다. 오스만 제국은 경제력이 어려운데도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주도의 동맹군에 참가하는 반면, 이란은 중립을 지켰던 것이다. 그러나 국경지대는 외국군간의 전쟁으로 피폐해졌으며, 흉작이 일어나 굶어죽는 자가 늘어났다. 게다가 1909년에 즉위한 아흐마드 샤는 무능하고 병치레가 잦았다. 결국 1919년 이란은 영국과의 보호령 조약을 체결하였다. 쿠데타 완료 아흐마드 샤와 내각의 대신들은 나약하고 부패했으며, 민족주의자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다. 특히 영국과 러시아는 상업적·전략적으로 이 나라에 강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레자 칸은 혼란 상태를 종식시키고, 잘 훈련된 군사를 기반으로 권력을 이양받아 진보적인 정부를 세우려고 했다. 그는 몇몇 젊고 진보적인 요인들과 접촉해 1921년 2월 21일에 1,200명의 군사를 이끌고 테헤란을 점령했다. 나이 젊은 사이드 지아 옷딘 타바타바이가 총리가 되었고, 레자 칸은 전쟁성 장관이 되었다. 전쟁성 장관과 내각총리대신 레자 칸은 이란을 쇄신해 발전시키려 하였다. 그는 이상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을 강압적인 군대식으로 내쫓아버렸다. 정적에 대해서는 강력한 정치재능을 발휘해서 그들을 분열시키거나 약화시켰다. 그는 전쟁성(Minister of War) 장관으로 임명되었고, 국군의 통수권 또한 그가 행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