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몽 푸앵카레(Raymond Poincar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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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레몽 니콜라 랑드리 푸앵카레(프랑스어: Raymond Nicolas Landry Poincaré)는 프랑스의 변호사 출신 정치인으로, 1860년 8월 20일 바를르뒤크(뫼즈)에서 태어나 1934년 10월 15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푸앵카레는 1913년 2월 18일부터 1920년 2월 18일까지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이었다. 수 차례 장관직과 국무회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이후 1913년부터 1920년까지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레몽 푸앵카레는 제3공화국의 가장 중요한 정계 거물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푸앵카레는 대통령 임기 동안 제1차 세계 대전을 이끈 지도자로서, 전쟁중이던 1917년에 조르주 클레망소를 국무회의 의장직에 임명했다. 대통령 임기 이후 푸앵카레는 1922년부터 1924년까지, 그리고 1926년부터 1929년까지 다시끔 국무회의 의장직을 맡았다. 유년기, 학업, 개인사, 가정사 레몽 푸앵카레, 출생명 레몽 니콜라 랑드리 푸앵카레(Raymond Nicolas Landry Poincaré)는 바를르뒤크의 유복한 가정에서 1860년 8월 20일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에콜 폴리테크니크 출신(1845년) 공학자로 토목 총감, 니콜라 앙토니 푸앵카레(1825-1911)였다. 부계쪽 가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17세기 뇌샤토 (보주) 근처 랑다빌 출신의 장 푸앵카레가 있다. 플로랑탱 피카티에 장군의 친척이던 어머니 나닌 마리 피카티에(1838-1913)은 독실한 신앙자였다. 레몽 푸앵카레는 바를르뒤크에 있는 독퇴르 뇌브 로에 위치한 외가쪽의 부르주아 저택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외조부모는 뇌이쉬르센에서 목재 거래로 재산을 모았다. 한편 모계쪽으로 레몽 푸앵카레는 루이 필리프 치세의 하원의원이던 장 랑드리 질롱의 증손자였다. 레몽 푸앵카레는 또한 낭시 대학교 의대 학장이던 에밀 푸앵카레의 조카이자, 훗날 물리학자이자 파리 학술원 부원장이 되는 뤼시앵 푸앵카레의 형이며, 석학이자 수학자인 앙리 푸앵카레의 친사촌이기도 하다. 앙리 푸앵카레는 언론인 니콜라 푸앵카레의 증조부가 된다. 부모의 저택은 프로이센 점령 시기 징발되었다. 이 사건에 뒤이어 1871년 푸앵카레는 자기 개의 이름을 독일 제국 수상의 이름에서 따와 비스마르크라고 불렀다. 낭시에서 교육을 받은 뒤, 파리의 리세 루이르그랑에서 학업을 마치고 이후 파리 대학교 법대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