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우르바노 6세(Pope Urban 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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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교황 우르바노 6세(라틴어: Urbanus PP. VI, 이탈리아어: Papa Urbano VI)는 제202대 교황(재위: 1378년 4월 8일 - 1389년 10월 15일)이다. 본명은 바르톨로메오 프리냐노(이탈리아어: Bartolomeo Prignano)이다. 아비뇽 유수가 재현되면 안된다는 로마시민들의 압박속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경솔하고 독단적이며 폭력적인 성품으로 교황으로서의 기본자질이 부족하였다. 급진적이고 과격한 개혁추진으로 분란이 거듭되었고 추기경들에 의해 대립교황이 선출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대립교황이 아비뇽으로 이주하면서 서방교회가 완전히 분열되어 버렸다. 유럽국가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지지하는 교황이 나뉘며 정치적으로도 완전히 둘로 갈라졌다. 분열은 교구와 본당 수도원과 가정에까지 확대됐다. 각 지역 교회는 두 명의 주교, 두 명의 주임신부를 갖게되었고 신자들마저 양측 추종자로 분열됐다. 교황들과 임명받은 성직자들은 서로 합법성을 주장하며 상대방을 파문했다. 서구대이교(西歐大離敎)라 불리는 서방 교회의 분열은 40년간 이어지다가 콘스탄츠 공의회에 의해 '공의회 지상주의'가 채택되면서 1417년이 되어서야 종결되었다. 교황의 자질부족으로 큰 혼란이 빚어졌고 그 과정중에 3명이 교황이 출현하는등 교황의 권위가 크게 실추되고 말았다. 생애 초기 이트리에서 태어난 프리냐노는 신심 깊은 수사로 아비뇽에서 결의론을 공부했다. 1354년 3월 21일 그는 나폴리 왕국의 아체렌자의 대주교로 서품받았다. 그는 1377년에는 바리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부상서원장으로 있을 때 소박하고 검소하며 실무적인 사람으로 명성을 쌓았다. 또한 그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비록 나중에 교황이 되고나서 네 명의 조카를 추기경에 서임하고 그들 중 한 명을 나폴리의 통치자로 두려고 했지만, 족벌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단점이 워낙 커서 이러한 그의 장점도 가리고 말았다. 루트비히 파스토르는 그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에게는 그리스도교적인 온유함과 애덕이 부족했다. 그는 태생적으로 독단적이고 매우 폭력적이었으며 경솔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