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프 페탱(Philippe Pétain)
이 스타의 새 소식이 올라오면 알림으로 받아보세요
날짜별 보기
누구인가요?
앙리 필리프 베노니 오메르 조제프 페탱(프랑스어: Henri Philippe Benoni Omer Joseph Pétain, 1856년 4월 24일 ~ 1951년 7월 23일)은 프랑스의 군인이며, 비시 프랑스의 국가수반으로 알려져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의 무훈으로 한때 프랑스의 국부로 칭송받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협력하여 프랑스인들의 공공의 적으로 지목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생애 유년기 필리프 페탱은 1856년 파드칼레주 코시알라투르(Cauch-a-la-Tour)에서 태어났다. 필리프의 아버지는 농부였고, 큰아버지는 가톨릭 신부였다. 필리프 페탱 역시 독실한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였다. 제1차 세계 대전 1876년 생시르 사관학교에 입대해 많은 시간을 보병 장교로 근무했다. 육군대학 교관을 거쳐 제1차 세계대전에 대령으로 참전, 후에 소장으로 진급되었다. 페탱은 '베르됭의 구원자'로 많이 알려졌다. 1915년, 그는 프랑스 제2군단을 통수하여 베르됭 전투를 시작하였다. 이 전투에서는 프랑스 제3공화국군이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그는 "그들은 못 간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1918년 11월, 그는 프랑스 제3공화국군 원수로 승진하였다. 비시 정부 수반 1차 대전의 영웅으로 군의 요직을 두루 거친 페탱은, 1920~30년대 프랑스의 주요 인물로 부상한다.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 제3공화국이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지헬슈니트에 의해 무너지자, 주전파인 샤를 드 골 등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며 비판하고 새로운 수반이 되어 독일에 항복하였다. 1940년 6월 22일 독일과의 휴전 협정을 체결하고, 비시 프랑스 수반이 되었다. 이후 비시 정부는 프랑스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주장하며 나치 독일과 협력했다. 그는 패전의 원인을 나약한 좌파 탓이라고 말하며 이름뿐인 재판을 벌였다. 또한 유대인의 가슴에 별을 다는 법을 금지했다. 히틀러가 프랑스군 포로를 죽이겠다고 협박하자 자신을 먼저 죽이라고 말하여 이를 무마시켰다. 사실상 비시 정부 자체가 마치 종이 인형 같은 바지 사장 정부였으며 실제로는 나치 독일의 조종을 받는 괴뢰정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