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타인잔(Phan Thanh G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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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판타인잔(베트남어: Phan Thanh Liêm / 潘淸簡)은 대남제국(응우옌 왕조) 말엽에 인물이며 문신(文臣)이자 제후이다. 1857년 민망 황제때 과거에 급제하여 출사했으며 진사시에 합격했고, 한림원 편수 등을 지내다가 한때 민망 황제의 노여움을 사 병사로 충군되어 백의종군하였다. 그러나 일반 병사로 참전하여 최전선에 나가 솔선수범하여 상관과 동료들의 존경을 받았다. 곧 복직하여 티에우찌제 때 예부상서, 뜨득제 때는 담임 협판대학사 겸 병부상서, 추밀원대신 등을 지내고 황제의 자문관이 되었다. 프랑스(Pháp, 팝) 유학파 출신으로 유럽(Châu Âu, 쩌우어우, 구주)의 과학문명 기술을 불신하였으나 수용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대남제국의 황제들이 천주교 선교사를 박해하자 프랑스, 에스파냐(Tây Ban Nha, 떠이반냐)에는 선교사 고문과 처형을 구실로 1862년 남부를 침공하여 사이공, 비엔호아, 빈롱을 점령했다. 1862년 5월 판타인전은 프랑스가 더 이상 베트남을 침략하지 않기를 원하는 뜻에서 저딘(사이공 근처)과 딘뜨엉(미토) 지역을 프랑스에 할양해주었다. 이는 남부 베트남 동부 지역에서 가장 비옥한 지역이었다. 서부 3성(三省)을 다스리는 태수(太守) 겸 제후(諸侯)로 있을 때 제1차 사이공 조약 체결에 참여하였으나 부당한 조약 체결에 반대하고 제2차 조약을 체결하였으나 프랑스에서 거부하고 서부 3성을 침공하자 책임을 통감하고 자결하였다. 티에우찌제와 뜨득제 당시 2조(二朝)에서 대신으로 봉직하였다. 폐쇄적인 쇄국정책과 보수주의 가치관, 유교의 정치과 윤리 원칙 등에 대한 집착으로 프랑스가 베트남을 정복하는데 기여했다는 비판과 저항하지 않고 매국 조약을 체결했다는 비판이 있다. 생애 어린 시절 출생과 가계 판타인전은 1796년 11월 11일 벤째 성 빈딘 근처의 시골 마을에서 중국계 이주민의 자손인 판타인응안(Phan Thanh Ngạn)과 럼티붓(Lâm Thị Bút)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선조는 중국인으로 복건성 등양현(海澄縣) 출신이었으나 명나라 멸망한 뒤 청나라에 반대하다가 베트남으로 이주하였다. 그의 선조들은 벤째 성 빈딘에 정착했고, 그의 어머니 역시 중국에서 망명한 복건성 출신 망명객의 후손으로 역시 중국계 혼혈인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