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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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올랭프 드 구주(프랑스어: Olympe de Gouges, 1748년 5월 7일 ~ 1793년 11월 3일)는 프랑스의 시민운동가이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혁신적인 주장을 하였다. 생애 어린 시절 올랭프 드 구주는 1748년에 스페인 인근에 위치한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그 마을의 '볼테르'라 불리었던 아버지 퐁피냥 후작과 세탁부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17세에 나이 많고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일찍 남편이 죽어 아들과 파리로 올라와 생활하였다. 사회 활동 올랭프 드 구주의 전기작가 올리비아 블랑에 따르면, 1773년에 구주는 부유한 남자인 자크 비에트릭스 드 로지에르(Jacques Biétrix de Rozières)를 만나 이후 긴 연애관계를 맺어오다 프랑스 대혁명때 결별했다. 구주는 예술 살롱, 철학 살롱에 드나들며 그곳에서 라 아르프(La Harpe), 메르시에(Mercier), 샹포르(Chamfort)와 같은 작가들과 교류했다. 또한 브리소(Brisso)와 콩도르세(Condorcet) 같은 잠재적 정치가들과도 만났다. 보통 구주가 자주 가던 곳은 마담 몽테송(Madame de Montesson)과 극작가 보아르네 백작부인(Comtesse de Beauharnais)의 살롱이었다. 구주는 당시 파리에서 사교계 문사들과 재치를 겨루며 숱한 남자들의 구애를 받았지만, 결혼은 단호히 거부하였다. 그는 연인의 재정적 후원을 받으며 세태를 꼬집는 소설과 희곡 등을 발표하였는데,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였고 사투리를 썼기 때문에 철자가 엉망이어서 집필은 대필작가에게 맡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치적 성향 올랭프 드 구주는 당시의 시대적 관점으로 봤을 때 과격한 여성인권 옹호론자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혁명적인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프랑스 대혁명과 함께 태어난 사상들이 구주가 가진 이상과는 거리감이 있었고 그녀는 부분적으로만 그 사상들에 동조했다. 계몽주의와 법치주의 구주는 과학적 합리주의를 동원하고, 비평적인 조사를 하며, 기성의 전통적인 도덕관념과 제도에 비판적이었던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그녀가 쓴 글에서 그 흔적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