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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나훈아(Na Ho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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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나훈아(羅勳兒, 본명: 최홍기, 본명 한자: 崔弘基, 1947년 2월 11일~)는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이고, 이른바 '가황(歌皇, 노래의 황제)'으로 일컬어진 그는, 1968년 3월에 데뷔해 2025년 1월 12일에 전격 은퇴했다. 생애 경상남도 부산부 초량동(지금의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2남 2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학창 시절의 나훈아는 노래를 좋아해 맨날 고향 부산 초량동의 뒷산에서 친구들과 함께 기타를 즐겨 쳤다고 하는데, 나훈아의 지인들은 나훈아가 악기를 다루는데 능숙하고 그 중에서도 피아노 실력이 가장 수준급이라고 밝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형을 따라 서울로 상경하여 서라벌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고교 2학년 때 오아시스레코드와 계약하여 두어해 후 1968년 〈내사랑〉을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자신만의 독특한 간드러진 꺾기 창법이 매력적이었던 나훈아는 1969년에 발표한 천리길, 사랑은 눈물의 씨앗, 님그리워 가 크게 히트하였으며, 1970년대에는 남진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이루었다. 남진과 나훈아는 1970년대의 가요계를 장악하면서 서로 경쟁을 벌여 보통 남진 아니면 나훈아가 가수왕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실제 방송사 기록을 보면 남진이 주로 1위와 동시에 가수왕상을 수상하였으며 나훈아는 주로 2위를 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나훈아는 남진과 함께 경쟁하면서 그 시기에 침체된 대중음악에 활력을 불어넣어 대중가요의 활성화를 이끌었다. 1970년대는 나훈아가 주요 히트곡을 동시에 발표하면서 남진이 발표하는 노래와 동시에 인기를 얻게 되자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합이 펼쳐졌다. 나훈아는 남진과 달리 대부분 차분하고 조용한 노래를 선곡하였으며 당시 무대에서 다양한 포즈와 꺾기 창법으로 트로트를 불러서 중년층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의 인기를 알 수 있듯이 삼성전자의 회장 이건희의 연회에 참석할 것을 초청받았으나 나훈아는 자신의 공연을 보기 위하여 표를 사는 이들한테만 노래를 한다며 단호히 거절하였다. 전성기를 한창 누비고 있었던 나훈아는 1972년에 서울시민회관에서 공연하던 중 한 남자에게 병 파편으로 피습을 당해 몇 개월을 입원하였다. 이 같은 소식을 들은 나훈아의 팬들은 남진의 팬이 나훈아를 다치게 했다는 루머를 믿고 서로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양측 모두 사실을 부인하면서 루머는 일단락되었다.

주요 이력

  1. 1947
    Bi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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