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아마르 알 카다피(Muammar Gadd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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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무아마르 무함마드 아부 민야르 알 카다피(아랍어: معمر محمد أبو منيار القذافي 듣기 , 문화어: 모아메르 엘 가다피, 1942년 6월 7일 ~ 2011년 10월 20일)는 리비아의 군인 겸 정치인이다. 이력 1969년, 리비아 육군 중위로 복무 중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폐지하고 리비아의 국가원수 겸 국가평의회 의장 겸 총리 겸 국방장관에 올랐다. 1977년 이슬람주의, 범아랍주의, 사회주의를 융합한 자마히리야(인민권력) 체제를 선포한 그는 '인민 직접민주주의'라는 독특한 체체 구축을 명분으로 의회제와 헌법을 폐지, 전제 독재권력을 강화했다. 1972년부터 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그 이후에도 정부 문건과 관영 통신에서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의 위대한 9월 사회주의 인민 혁명의 수호자' 내지는 '혁명의 지도자이자 수호자'를 자칭하며 민족주의, 반미주의 독재정치를 폈으며, 이러한 이유로 인해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그를 중동의 미친 개라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2009년 2월부터 2010년 1월까지 아프리카 연합 의장을 지냈으며, 리비아 지역이 1551년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된 이래로(당시 트리폴리) 리비아의 최장기 국가 지도자였다. 그러나 2011년 초에 시작된 아랍의 민주화 시위의 영향을 받아 리비아에서도 2011년 2월 카다피 정권에 대항해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으며, 2011년 8월 22일 자유 리비아군이 트리폴리에 진입하여 그의 아들 둘을 생포했다. 같은 해 10월 20일 그는 고향 시르테에서 사살되었다. 생애 생애 초기 출생지는 리비아 시르테 주 시르테 근처로 1942년 유목인인 베두인족의 일파인 카다파 부족 가문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베두인식 이슬람 종교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가난한 환경에서 여러 형제와 친척들과 함께 성장했으나 그는 공부와 출세에 대한 의욕, 욕망이 남달랐다고 한다. 1952년 10살 때 방송으로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 등이 이집트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선포하자 여기에 영향을 깊게 받아 그의 아랍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 의념을 따랐다. 이때부터 카다피는 나세르의 영향을 받아 아랍세계를 통일해 기독교 세계에 대항하려는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1956년 수에즈 사태에서는 반이스라엘 시위에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