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밀리 드 브르퇴유 뒤 샤틀레 후작부인(Émilie du Châte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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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샤틀레 후작부인 가블리엘레 에밀리 르 토넬리에 드 브르퇴유(프랑스어: Gabrielle Émilie Le Tonnelier de Breteuil, marquise du Châtelet)는 에밀리 뒤 샤틀레(영어: Emilie du Chatelet, 1706년 12월 17일 ~ 1749년 9월 10일)로 알려진 프랑스의 과학자이다. 최초의 근대과학의 여성과학자로 불린다. 여성의 중등교육을 허락하지 않았던 시대였지만 에밀리의 가문은 높은 계급에 속했고 상당한 자산을 소유했기 때문에 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남자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 속에서 학문을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라틴어로 쓰여진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명료한 이해를 돕는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그만큼 프린키피아를 뿌리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또 형이상학적인 개념에 머물렀던 라이프니츠의 활력(라틴어: vis viva) 개념을 과학에 도입했다. 언어학에도 뛰어났던 그녀는 라틴어, 이태리어, 그리스어, 독일어에 능했고 과학연구 뿐 아니라 번역에도 힘썼다. 문법 연구와 성서에도 관심을 갖고 연구를 했으며, 라틴어와 그리스 고전들을 번역했다. 《오이디푸스》를 번역하기도 하였으며 《행복론》을 쓰기도 했다. 생전에 남긴 업적은 사후 《백과전서》 편찬에 활용되었다. 생애 성장 과정 1706년 12월 17일 파리에서 네 자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인 루이 니콜라스(프랑스어: Luis Nicolas le Tonnelier de Breteuil)는 교육열이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 일찍이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아버지의 후원으로 그녀는 남자 형제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당대 여자들은 받을 수 없었던 수학, 문학, 과학 교육을 받았다. 또한 스페인어, 영어, 이태리어,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를 배웠다. 그녀는 곧 가정교사들이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베르사유에서 그녀와 지적인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 가브리엘 안느는 딸이 상류층 여성이 지녀야 할 태도를 갖추길 원했지만, 그러기에 에밀리는 과학, 철학, 신학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루이 니콜라는 딸에게 펜싱과 승마를 가르쳤다. 펜싱 실력이 좋아 궁정에서 유명한 왕실 근위대장인 자크 드 브룅이라는 사람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모두가 보는 광장에서 벌인 결투는 어머니를 당혹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