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오 켐페스(Mario Kem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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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마리오 알베르토 켐페스(스페인어: Mario Alberto Kempes, 1954년 7월 15일 ~ )는 은퇴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축구선수다. 그는 전성기 시절을 발렌시아 CF에서 보냈는데, 그곳에서 투우사 (El Matador)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1978년 FIFA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었다. 2004년 3월에는 FIFA 100에 선정되었다. 켐페스는 7살때 유소년 클럽에 들어갔고, 15세때 인스티투토 아틀레티코 센트랄 코르도바의 유소년 클럽에서 활약했다. 그 후 로사리오 센트랄에서 뛰면서 107경기에 나와 86골을 넣어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하드워킹 포워드(Hardworking Forward)라고 불렸는데, 페널티 에리어 바깥쪽에서부터 달려들어와서 공격을 하는,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공격법을 사용하였다.(당시 중앙공격수는 페널티 에리어 안에서 혼자 활동했다.) 수비수들은 그의 공격법을 제대로 대처해내지 못했었다. 그는 1973년부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활약했었다. 그는 1978년 FIFA 월드컵의 아르헨티나 선수중 유일하게 외국에서 활약하던 선수였다. 그는 당시 발렌시아 CF에서 뛰고 있었다. 그는 1977시즌과 1978시즌 프리메라리가의 득점왕이었고, 월드컵에서도 그러할 것이라고 판단되었었다. 그러나 그는 1974년 FIFA 월드컵에서 득점을 하지 못했고, 1978년 월드컵의 토너먼트때까지 득점순위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1978년 FIFA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아르헨티나는 페루와 폴란드를 연파하면서 결승에 진출하였으며 결승에서도 네덜란드와 연장 혈투끝에 신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켐페스 자신도 6골을 넣었고, 그 월드컵의 득점왕이 되었다. 이로써 그에게는 투우사, 야생마 등의 별명이 붙었다. 그는 1981년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했고, 1982년 다시 발렌시아로 돌아가 2시즌 동안 활약했다. 1982년 FIFA 월드컵에도 출전했는데 이 당시의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은 엔트리상으로 지상최강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는데 켐페스와 마라도나가 주전으로 뛰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당시 세계 축구계에서는 켐페스와 마라도나 중에 한명만 보유해도 우승후보라 여겨졌는데 아르헨티나는 이 뛰어난 두 명의 선수를 모두 보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