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크리누스(Macr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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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마르쿠스 오펠리우스 마크리누스(Marcus Opellius Macrinus, /məˈkrɪnəs/ ; 165c. ~ 218년 6월)는 217년 4월부터 218년 6월까지 어린 아들 디아두메니아누스와 함께 재위했던 로마 황제이다. 마우레타니아 카이사리엔시스 속주에 위치한 도시인 카이사레아 (현재 알제리의 체르첼)의 베르베르인 에퀴테스 가문 출신으로 최초로 로마 원로원 출신이 아닌데다가 재위 기간 동안 로마를 방문한 적 없는 황제이다. 황제가 되기 전 마크리너스는 카라칼라 황제 밑에서 프라이펙투스 프라이토리오로 재직하며 로마의 내정을 담당했다. 이후 카라칼라를 살해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마크리누스는 제국의 동부 속주에 있는 동안 217년 4월 11일에 로마 황제로 선포되었고, 이후 원로원에 의해 황제로 추인되었다. 그러나 재위 기간 동안 로마로 돌아갈 기회를 얻지 못했다. 당시 카라칼라의 정책으로 인해 로마는 재정난에 처해 있었으며 파르티아 제국, 고대 아르메니아 왕국, 다키아 등 여러 왕국과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이에 마크리너스는 황제로서 로마의 경제적, 외교적 안정을 회복하기 위한 개혁을 시행하려고 시도했다. 마크리너스의 외교적 조치로 각 왕국들과 평화를 이루었지만, 재정 개혁으로 인해 로마 군인들로부터 불만을 샀다. 이를 감지한 카라칼라의 이모 율리아 마에사는 반란을 일으켜 14살 손자 엘라가발루스를 황제로 옹립했다. 218년 6월 8일 마크리너스는 안티오키아 전투의 패배로 축출되었으며, 엘라가발루스는 반란을 일으킨 로마 군단의 지원을 받아 자신을 황제로 선포했다. 도망친 마크리너스는 로마로 가려고 했으나 칼케돈에서 체포되어 이후 카파도키아에서 처형당했다. 파르티아의 황제 아르타바누스 4세에게 보낸 아들 디아두메니아누스 또한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붙잡혀 처형되었다. 마크리너스가 죽은 후, 원로원은 마크리너스와 디아두메니아누스를 로마의 적이라고 선언하며 기록말살형에 처했다. 배경 및 경력 마크리너스는 마우레타니아 카이사리엔시스 속주에 위치한 카이사레아 (현재 알제리 체르첼시)에서 베르베르계 에퀴테스 계층 가문에서 태어났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포터는 마크리너스가 귀에 뚫린 구멍은 베르베르인들의 고유 풍습이라고 적었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던 마크리너스는 로마 정계에 진출할 수 있었으며, 유능한 법조인으로 명성을 얻으면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치하에서 주요 보직을 맡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