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 16세(Louis X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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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루이 16세(프랑스어: Louis XVI, 1754년 8월 23일 ~ 1793년 1월 21일)는 1774년부터 1792년까지 프랑스 왕국을 통치한 부르봉 왕가 출신의 5번째 왕이다. 루이 15세의 손자이며 본명은 루이 오귀스트다. 프랑스 혁명 때 퇴위당하고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마지막 루이(Louis le Dernier)’라는 별명이 있다. 절대 왕정의 성공 여부는 군주의 인격과 능력에 많이 좌우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성품, 자질, 적성이 맞지않았고 무능하며 정치에 무관심하기까지 했다. 정책에 일관성이 없었고 선대(루이 14와 15세)로부터 물려받은 재정악화에도 불구하고 미국 독립혁명을 지원함으로 프랑스 경제를 파탄일보 직전까지 내몰았다. 1788년 기후악화로 인한 대흉작은 백성들이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신분제에 따른 불만등으로 인해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다. 1791년 9월 3일, 혁명세력에 의해 프랑스가 입헌군주국으로 선포되며 신분이 전제군주에서 입헌군주로 바뀌었고, 1792년 9월 21일에 공화국이 선포되면서 군주제가 폐지되자 신분이 파리시민으로 변경되었다. 개요 국정 성품이 선량했던 루이 16세는 프랑스 사회를 개혁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나약하여 의지와 추진력이 부족하였다. 군주로서 결여된 이런 부분은 훗날 닥쳐온 비운의 최대 원인이 되었다. 당시 귀족층의 사치스러운 생활 또한 심각하였다. 튀르고를 등용하여 구제도의 모순 해결, 재정위기를 타개하도록 하였으나, 궁정 및 특권 신분의 저항으로 실패하였다. 이어 네케르를 기용하였으나, 미국 독립혁명에 개입하여 국비를 낭비함으로써 재정은 더욱 곤란해졌다. 이후 칼론, 브리엔을 기용하였으나, 재정은 악화될 뿐 개혁은 특권신분의 반항으로 실현할 수가 없었고, 1788년 삼부회(三部會) 소집을 결정, 재차 네케르를 기용하였다. 혁명 1789년 6월 삼부회가 국민의회로 성장하여 입헌왕정을 향한 움직임이 높아지자, 루이 16세는 군대를 불러 의회를 탄압하고자 책동하였다. 이것이 도리어 바스티유 감옥의 공격을 초래하고, 군대는 시민의 봉기에 굴복하였다. 루이 16세는 1789년 체제에 입각한 입헌군주제 지향에 차츰 권력을 양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