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엽(Lee Seung-yu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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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요?
이승엽(1976년 10월 11일 (음력 윤8월 18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 전 최강 몬스터즈 감독이며, 전 두산 베어스 감독이자 현 NPB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이다. 선수 경력 아마추어 시절 중앙초 감독이 그의 아버지와 협상했다가 불발됐고 그는 야구를 시작할 때까지 단식하겠다고 해 그의 아버지를 설득시켜 야구를 시작했다. 투구와 타격 모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좌완 투수로 좀 더 이름을 알렸다. 그는 경상중학교 재학 당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 1993년 청룡기 대회에서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 1994년 청소년 국가 대표로 선발된 그는 투타에서 고루 활약을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한국 프로야구 시절 삼성 라이온즈 시절 1995년 KBO 리그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투수로 입단하였다.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경북고등학교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은 그는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로부터 1년만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반응이 나와 1루수로 완전히 전향했다. 당시 삼성 1루수 요원 중에서는 김성래가 시범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을 당해 전열에서 이탈한 데다 부상에서 회복한 1993년부터 본격적인 주전 우익수로 나선 이종두가 어깨와 허리 통증을 호소해 전년도인 1994년부터 완전히 지명타자로 바꾼 양준혁이 우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바람에 1994년부터 포지션을 바꾼 이만수 외엔 쓸만한 1루수 자원이 없어 그가 1루수로 전향했다. 그가 타자로 전향하자 ‘좌승엽 우승관’으로 불리며 기대를 받았던 입단 동기 내야수 김승관은 상대적으로 기회가 줄어 2004년 롯데에 트레이드된 후 2007년에 방출돼 그 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하며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점차 그는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내야수 이동수에게 밀려 데뷔 첫 해에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하며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